공천헌금이 또 말썽이다.
중앙선관위가 최근 19대 총선 공직후보자추천위원이었던 새누리당 현기환 전 의원이 현영희 의원으로부터 비례대표 공천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현 전 의원과 현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일로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2008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등으로 수차례 곤욕을 치러 당명까지 바꾸면서 정치쇄신을 다짐했던 새누리당은 패닉에 빠졌다.
현재 검찰에 고발된 당사자들은 “결백하다”“사실무근”이라면서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제보자인 현영희 의원 전 수행비서의 진술 등을 토대로 조사를 벌여 주고받은 돈의 액수 및 전달 경로까지 특정한 것을 보면 전혀 근거없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총선 공천헌금과 관련한 추문은 고질적인 단골메뉴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전 대표의 측근인 심상대 전 사무부총장도 지난달 16일 이번 총선의 지역구 후보공천 대가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5년 전 18대 총선도 갖가지 공천헌금 사건으로 얼룩졌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인 김옥희씨가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미끼로 수십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미래희망연대(옛 친박연대)에서는 비례대표인 양정례·김노식 의원이`특별당비`명목으로 각각 10억원이 넘는 돈을 낸 사실이 밝혀져 당선이 취소됐고, 서청원 대표는 결국 구속됐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도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이한정 비례대표 후보에게 6억원의 당채(黨債·당이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한 채권)를 사게 해 의원직을 잃었다. 이 의원의 당선도 무효가 됐다.
논어에서는`사견위치명(士見危致命), 견득사의(見得思義)`라고 했다. 선비는 나라에 위기가 닥치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얻을 일이 생기면 옳은 지 어떤지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누구라도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그래서 누군가 돈을 건넬 때 옳고 그름을 따져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받아도 되는 돈이 있고, 받아선 안되는 돈이 있다. 옳고 그름을 넘어서 갖고 싶은 욕망이 불타 오를 때 어떻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까.
후한시대 양진이 태수로 부임하기 위해 임지로 가는 도중 날이 저물어 객사에 머무르게 됐다. 그곳의 현령 왕밀이 양진을 찾아와 황금을 내놓으며 지난 날 신세를 진 것에 대해 사의를 표시했다. 양진은 깜짝 놀라며 받지 않으려고 하자 왕밀이 “아무도 모르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진은 “하늘이 알고(天知), 땅이 알고(地知), 그대가 알고(子知), 내가 안다(我知)”며 황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바로 사지(四知)의 교훈이다.
조선시대 실학자이자 정치가인 정약용도`목민심서`에서 뇌물은 아무리 비밀리에 주고 받더라도 들통이 난다며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상대가 안다는 사지(四知)를 주장했다.
12월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검찰 수사를 통해 공천헌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새누리당과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받을 정치적 타격은 그야말로 심각하다.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이 그처럼 `쇄신·개혁공천`을 역설했는데도 뒤로는 `돈 공천`이 이뤄졌다면 박 전 위원장의 `신뢰의 정치`도 빛이 바래고 말 것이다. 더구나 박 비대위원장은 “공천이야말로 정치쇄신의 첫 단추” “쇄신작업이 용이라면 공천작업은 마지막 눈동자를 그려넣는 화룡점정(畵龍点睛)”이라는 말로 투명한 공천, 개혁 공천을 부르짖었기에 더욱 그렇다. 정치판에서 고질병에 가까운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뇌물관행이 사라질 날은 언제일까. 사지(四知)의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