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조선 전기 중흥의 정점을 찍었던 성종에게 할아버지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성종은 뭐라고 답할까? 세조를 어린 조카로부터 왕위를 찬탈한 날강도 같은 놈이라고 하진 않을게다.
아마 중신들의 전횡으로부터 왕권을 지키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답할지 모른다. 물론 역사는 조선초기 왕권강화에 힘썼던 세조의 업적을 평가하는 동시에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왕이라는 비판까지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뜬금없이 역사얘기를 꺼낸 것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의 5·16과 유신에 대한 역사인식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 협회 초청토론에서 5·16군사쿠데타에 대한 질문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 아닌가”라고 답했다. 또 5·16과 유신시대에 대해서는 “찬반논란이 있기 때문에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야당은 곧바로 박 후보의 역사인식을 문제삼고 나섰다. 통합진보당 노회찬 의원은 “결과적으로 도움이 됐다는 식의 이야기는 일본의 식민 통치가 한국 근대화를 만들어냈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고 했고, 민주통합당 김한길 최고위원은 “5.16 쿠데타가 정치군인에게 최선의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힘없고 선량한 국민들에게는 최악의 비극이었다”고 했다.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들도 박근혜 때리기에 나섰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말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훌륭한 리더지만, 5.16을 쿠데타라고 하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김태호 의원과 임태희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후 여러 가지 성과가 있었지만 역사에서 왕위찬탈인 것처럼 “쿠데타는 쿠데타”라고 잘라 말했다.
정치권의 비판처럼 5·16은 4·19혁명으로 이승만 10년 장기독재를 무너뜨린 후 민의에 의해 선출된 정부를 전복시켰다는 점에서 `반(反)민주 군사쿠데타`란 평가를 면할 수 없다. 더구나 유신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질식상태로 몰고가 부마(釜馬)민주항쟁을 불러왔을 뿐 아니라 10·26사태와 또 다른 군부독재정권을 잉태한 5·17쿠데타를 초래했다. 새삼스럽게 국민과 역사에 평가를 맡겨야 할 사안이 아닌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5.16과 유신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하는 것은 딸로서 아버지를 욕하는 결과가 되기에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인이 쿠데타요, 독재라 비판하는 사안에 대해 `역사에 평가를 맡기자`며 비켜가려 해봤자 날선 비판에 직면하게 될 뿐이다. 박근혜 후보는 이제부터라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사인(私人)인 딸로서가 아니라 공인(公人)인 대통령 후보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의 고대 병법인 36계 가운데 11번째 계책으로, `이대도강(李代桃僵)`이란 말이 있다.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넘어지다`라는 뜻으로, 작은 손해를 보는 대신 큰 승리를 거두는 전략이다. 이른바 나의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취하는 전략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라는 부정적 유산과 함께 새마을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기반을 다진 대통령이란 긍정적 유산도 함께 박 후보에게 물려줬다. 따라서 박 후보는 이대도강의 계책을 취해 공인인 대통령 후보로서 5·16과 유신에 대해서는 잘못됐다고 시인하는 게 옳았다. 그런 연후 딸 박근혜로서 볼 때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답했다면 긍정적 유산을 자연스레 물려받지 않았을까.
만약 친일파의 후손이 선출직에 나서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선대의 행동은 분명 잘못됐다.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나의 몸과 재산을 바쳐 국가사회에 봉사하겠다”고 선언해야 하지 않겠는가. 데일 카네기는 “사람을 움직이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박근혜 후보의 현명한 결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