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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

등록일 2012-07-11 21:09 게재일 2012-07-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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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석준수필가
옛날 어느 장군이 산적을 물리치고 승전고를 울리며 근방 절을 찾아갔다. 주지 스님은 출타중이고 사미승이 절을 지키고 있었다. 장군은 수백 명의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오만한 태도로 “스님,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업보에 따라 극락에도 가고 지옥에도 떨어진다고 하는데 대체 지옥과 극락이 어디 있단 말이오?”하고 물었다. 장군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미승이 오른손을 번쩍 들어 그의 왼쪽 뺨을 후려쳤다. 엉겁결에 뺨을 맞은 장군은 순식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수많은 산적을 물리치고 기세당당한 장군이 부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뺨을 맞았으니 화가 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군은 얼굴을 붉히며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단숨에 스님의 목을 베려 들었다. 이 때 스님은 맑고 평화로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장군님, 장군님은 저에게 극락과 지옥을 묻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먼저 지옥을 알려 드렸습니다. 제가 장군님의 뺨을 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저를 죽이려고 칼을 빼지 않았습니까? 사람을 살해하려고 칼을 뽑아든 장군님의 분노한 마음, 그 자리가 곧 지옥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장군은 어이가 없어 뽑았던 칼을 다시 칼집에 넣으며 파안대소했다. 그러자 스님이 말했다.

“장군님의 지금 마음 상태가 곧 극락입니다”

극락과 지옥은 사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극락과 지옥을 왕래하고 있다. 아마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 지옥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극락)을 바라고 불행(지옥)을 싫어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마음을 바로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마음을 잘 쓸 수 있는가? 마음을 잘 쓰려면 먼저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선종의 초조로 추앙 받고 있는 달마대사가 소림사에서 면벽 참선을 하고 있을 때 하루는 신광이라는 젊은이가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스님, 저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너의 불안한 마음을 이리 가져오너라. 내가 편안하게 해주리라”

“스님, 아무리 마음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는 한참을 침묵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이제 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신광은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마음, 빛깔도 없고 모양도 없는 마음, 그러나 우리의 존재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마음이다.

원효스님의 행장(行狀)을 보면 의상스님과 함께 불법을 공부하기 위하여 당나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서해안에서 배를 타고 가기 위해 해물당주를 향해 걷다가 날이 저물어 인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쓰러져 잠이 들었다. 잠결에 목이 몹시 말라 물그릇을 찾으니 마침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서 실컷 마셨는데, 물맛이 얼마나 좋은지 마치 감로수와 같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잠을 잔 곳은 무덤가였고, 마셨던 물은 해골에 고였던 물이었다. 해골에 든 물을 마셨다는 생각이 들자 원효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비위가 거슬려 간밤에 마신 물을 다 토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원효는 부처님께서 화엄경에서 하신 말씀, 즉 “모든 법은 마음 따라 일어나고 모든 법은 마음 따라 사라지니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부정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낙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비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서 이 세상은 극락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하며, 행복한 인생이 되기도 하고 불행한 인생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마음의 산물이요,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면 그 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이제 그 해답은 스스로가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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