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권불오년(權不五年)의 교훈

등록일 2012-07-06 21:50 게재일 2012-07-06 22면
스크랩버튼
▲ 김진호 논설위원

권력무상(權力無常)이다. 아니 권불오년(權不五年)이라 해야하나.

현직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 수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이번 주중 사전구속영장이 신청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정치권에선 `드디어 올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이렇듯 이 전 의원의 사법처리가 확실해지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야당후보에게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고 난 뒤 현직 대통령의 친형이자 당시 5선 중진의원이었던 이 전 의원의 총선 출마여부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서울은 물론 지역정가에서는 이상득 의원의 18대 총선출마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이자 이상득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모 호텔로 지역기자들을 초대했다. 그 당시만 해도 경북 구룡포 출신이자 동아일보 정치부장을 지낸 최 전 위원장은 대구·경북기자들에게 `선배` 예우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최 전 위원장은 이 전 의원의 총선 출마에 대한 지역 여론동향을 물어보면서 이 전 의원의 총선 출마 당위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의 친형이라고 해서 총선에 출마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맞지않다. 야인으로 있어도 현직 대통령의 친형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법부인 국회에 진출해서 양지에서 대통령을 지원하는 게 세간에서 걱정하는 친인척 비리방지 차원에서도 더욱 낫다”

이같은 설득에도 불구하고 몇몇 기자들은 이 전 의원의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지만 정권실세로 떠오른 최 전 위원장의 끈질긴 설득에 상당수 기자들은 마지못해 수긍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최 전 위원장이 분위기를 잡은 뒤에야 이 전 의원도 자신의 총선 출마에 대해 “명박이는 명박이고, 나는 나다” “지역구 주민이 나를 원한다”며 자신의 출마를 공언하고 다녔고 결국 6선 의원에 당선됐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2008년 18대 총선 때 세간의 반대여론에 따라 이 전 의원이 총선에 불출마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역사에 이프(If)는 없다` 지만 `영일대군`, `상왕(上王)`등으로 불리던 이 전 의원의 `날개없는 추락`이 그만큼 안타깝고 아쉽기에 하는 말이다.

그는 동생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늦어도 2008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기 전에 정계에서 은퇴하고 현실정치에서 손을 뗐어야 했다. 이 전 의원은 지난 해까지만 해도 기자들을 만나면 “내가 무슨 정치에 관여하나. 왜 나를 음해하나”라고 억울한 듯이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가 알게 모르게 고위 공무원 인사에 개입하고, 국정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음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었다.

이처럼 역대 정권마다 친인척·측근 비리가 척결되지 않고 되풀이되는 이유는 뭘까.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란 지적도 있지만 그 보다는 대통령 자신이 확고한 결의로 친인척·측근 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결심을 다지지 못했기 때문일게다.

특히 이상득 전 의원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에게 특별한 형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 대통령은 자서전 등을 통해 어릴 적부터 형을 어려워했고, 심지어 존경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대통령후보 시절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되고서도 `정치적 멘토`로서 형의 말을 경청했다. 지난 2008년 6월 정두언 의원 등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이 대통령 주변 측근들의 권력 독점을 비난하고 나섰을 때 이른 새벽 청와대로 찾아가 권력의 핵심이었던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박영준 대통령기획조정비서관의 경질을 제안한 사람도 이 전 의원이었다. 한 마디로 이 전 의원은 `대통령도 어려워 한 형`이었고, 그 때문에 `권불오년`이란 역사의 교훈이 되고야 말았다.

김진호의 是是非非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