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희 시인, 본지 기획 연재 `경북해양문화속 인생길' <br>엮어 단행본 `뒤안' 출간
지난해 1월 본지는 권선희 시인과 함께 지역의 문화를 찾아 1년 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책으로 만나고 싶다는 독자들의 권유와 본지 창간 22주년을 기념, 총 40여 편에 이르는 이야기 중 스무 편을 골라 `뒤안'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경북 동해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길과 사람, 풍습과 전설을 통해 삶에 대한 진정성을 인식하고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포항등 5개지역 걸친 대장정 ... 길·사람·풍습 갖가지 얘기들
구수한 사투리로 생생한 전달 ... “지역문화 관심갖는 계기 되길”
지난 17일 접시꽃이 붉은 신호등처럼 피는 구룡포 뱃공장 언덕에서 권선희 시인<사진>을 만났다.
“비린내 나는 시집 한 권을 만들 요량으로 구룡포에 들어와 산 세월이 10년을 훌쩍 넘었다”는 그는 이렇게 멋진 포구를 작업실로 가진 글쟁이는 아마 없을 거라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문화부 기자와 작가로 맺은 나와 그의 인연 또한 제법 세월을 쌓았다. `시인이 만난 사람', `왼쪽 의자' 등을 본지에 연재한 탓에 나는 늘 원고 독촉을 했고 그는 전생에 진 빚을 갚듯 글을 써 주었다.
“받아드는 순간, 시큰하더군요. 그래서 책을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그는 지천명을 앞둔 나이에 꼬박 1년 이라는 시간을 길 위에서 글을 썼다. 구룡포 말목장성을 시작으로 해병대의 추억담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들려준 마흔여 편에 이르는 이야기는 울진에서 영덕, 포항, 경주, 울릉에 이르는 경북 해안권 5개 시, 군을 배경으로 펼쳐진 파노라마였다. 특히 우리 지역의 구수한 사투리로 풀어 낸 고래잡이배 선주 이야기와 해녀 할매의 넋두리는 마치 곁에서 듣는 듯 생생했다. 그러나 그의 여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원고 정리를 하다가 잠깐 눈 붙인 낮잠 속에서 주웠다는 제목이 바로 `뒤안'이었다. 슬쩍 떠 본 이웃들의 반응은 썩 내키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나 마음은 이미 `뒤안'에 가 있었다. 늘 비질하며 가꾸는 앞마당이 아니라 뒤꼍, 시집살이 하던 어머니가 남몰래 친정을 그리워하던 곳, 시누대 울타리 사이로 바람이 수런대며 살던 곳, 둥근 두레밥상 위에 가난을 올리고도 눈알 까만 새끼들과 꽃이파리처럼 둘러앉던 시절이 `뒤안' 이란 말 속에서 숨 쉬는 듯 했기 때문이다. 마흔 가지가 넘는 이야기 하나 하나가 한결같이 애착이 갔지만 모두 실을 수는 없었다. 스무 편의 이야기를 선정하고 총 3부로 나누었다. 1부에는 해양관련 업종을 천직이라 여기고 살았던 해녀와 고래잡이, 목선을 제작하던 배목수 등 세월 너머로 사라져 가는 기술과 사람들을, 2부에는 작은 마을이 품은 풍습과 전설과 그 마을 사람들이 살며 겪은 시대를, 3부에는 경북 해안지역의 길을 직접 걸으며 만났던 풍경들을 담았다.
말씨는 지역의 특성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것이었다. 연령대 별로 조금씩 변형된 언어 형태를 보였는데 그것은 문명의 변화를 증명하는 증거인 셈. 그리고 말투는 단순한 전달 기능 이외에도 감춰둔 심사와 본능, 타고난 심성 까지도 담고 있었다. 이 또한 머지않아 묻히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그대로 받아 옮기기 시작했다. 우예든동, 우짜든동, 우야꼬….
“정말 좋은 공부를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이론보다 더 깊은 이치를 만났거든요. 누군가는 쉽게 무지랭이라 덮었을 어르신들에게 그토록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살이'의 도표가 숨어 있다는 걸 예전엔 짐작 못했지요. 새끼들을 낳아 기르는 것, 먹고 사는 것, 관계를 형성하는 것, 자연을 대하고 삶과 죽음을 대하는 그 의연하고도 늠름한,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요? 한 마디로 세상 더없이 훌륭한 강사들이었고 강의였습니다.”
본지가 그녀에게 기획 특집 `경북해양문화 속 인, 생, 길'에 관한 연재 제안을 한 건 2010년 12월 하순이었다.
“작정하고 바닷가 마을에 살러 들어 온 이상 언젠가는 해야지, 해야지 맘먹었던 일이지만, 여러 이유로 막상 제안에 잠시 망설였지요. 그러나 오줄없는 호기심은 고개를 들었고, 2011년 새해가 열리기 무섭게 조선시대 군마 사육장인 말목장성을 첫 회로 연재를 시작했지요. 돌아보면 가장 감사한 부분이예요. 신문사의 기획과 제안, 그리고 연재가 주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귀한 이야기를 만나지도, 쓰지도, 묶지도 못했을 겁니다.”
“첫 시집을 내고 5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버린 탓에 두 번 째 시집을 내자는 출판사로부터의 제안이 날아들었기 때문이었지요. 지난 몇 년간 르포나 다큐물 책자를 만드느라 지친 탓도 있었을 것”이라는 그는 막상 책 발간을 준비하면서 은근 바람이 생겼다.
“아니, 바람이라기보다는 욕심이라고 하는 게 좋겠네요. 첫째는 이번 작업을 계기로 경북매일신문은 물론이고 지역의 언론사가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수집하고 전하는 역할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언론사 뿐 아니라 기업이나 단체도 여러 장르의 다양한 방법을 통해 관심을 가질 수 있겠지요. 얼마나 근사합니까. 창간 기념일에 일반 기념품 대신 책자나 사진첩, 혹은 전시나 공연을 펼치는 멋진 이벤트 말입니다. 그런 관심들이 근대화의 물결에 마을을 내어 준 딴봉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찾아주고, 장기 뇌성선 뇌록을 문화재로 세우고, 늙은 어부의 낡은 어깨도 당당히 펴줄 것입니다. 둘째는 지역 작가들이 자신이 살아온,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작품을 되도록 많이 썼으면 하는 것입니다.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테니까요. 셋째는 개개인이 삶을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으면 하는 것입니다. 매우 소소한 듯 보이지만 그 메모들 속에 이웃이, 사회가, 시대가 고스란히 담깁니다. 이번에 발간한 `뒤안'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모두가 우리 할매, 할배, 어무이, 아부지, 그리고 고모, 삼촌의 이야깁니다. 그 안에 다름 아닌 우리가 있지요.”
지식이 경쟁력인 시대는 지났다. 물론 전문적인 분야는 예외겠지만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지식이 환히 오픈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건 `심성'의 가치다. 심성은 하루아침에 공부하겠다고 달려들어 될 일이 결코 아니다. 가랑비에 몸 젖듯 어미 애비는 자식에게, 자식은 또 자식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사이에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 시인은 “안타깝게도 말씀을 들려주신 분 중 세 분이 세상을 떴다”며 “고래잡이 선주 김준기 옹, 해녀 김옥기 할매, 그리고 일본인가옥거리에 대한 자료를 챙겨주셨던 마츠모토 할아버지. 눈 감으면 모습, 말씨 생생하지만 이제 사람은 가고 이야기만 남았다”고 했다. 들려 줄 이도 들어 줄 이도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꿈꾸며 살 수 있을까?
“덕동 마을 관장님, 딴봉 마을 회장님, 뇌록을 만나게 해 준 금낙두 선생님을 비롯해서 경주 전촌교 아래서 용 이야기를 들려주신 거마장 마을 어르신들, 연자방아가 있던 마당에 둘러 앉아 시집살이 들려주던 두원리 호쾌한 아낙들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돌문어를 잡는 김헌길씨, 중매인 황보관현씨, 바다를 낚는 청년 조성식씨 등 연재는 했으나 책에 싣지 못한 분들도 많지요. 특히 자료 구하기가 어려워 동동거릴 때마다 흔쾌히 주변을 수소문 해 주신 우리 마을 연규식 수협장님, 정말이지 빚을 많이 졌습니다.`뒤안'은 그들과 함께 만든 책인 셈이지요.”
연재를 할 때 글과 사진을 함께 실었다. 그러나 막상 스무 가지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한 권에 묶으려 하니 솜씨 없는 사진들이 큰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발간을 앞두고 사진가 안성용씨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그는 흔쾌히 곳곳의 사진을 멋지게 담아줬다. 서예가 정현식씨는 `뒤안'이란 글씨를 써줬다.
그는 “다른 책자를 발간할 때와 `뒤안'을 발간할 때 사뭇 느낌이 달랐던 것은 거기 감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쉬움 또한 수북하다”는 그는 “그래서 다행이예요. 아쉬움은 떠나지 않게 붙들어 놓기 때문이지요.”
그는 앞으로도 길 위를 서성일 것이고 말씀을 받아 적을 것이다. 말씀들이 한 줄 시로, 문장으로 일어서서 독자에게 갈 것을 꿈꾼다.
“재미삼아 타로 점을 본 적이 있어요. 대번에 역마살(驛馬煞)을 이야기 하더군요. 저는 왠지 그 말을 믿고 싶어요. 평생 역마살이 떠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늘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야만 하는 액운,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지만, 내게 역마살이 없다면 글쟁이로 살기를 포기해야겠지요.”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