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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기지개 읽는 즐거움 4

등록일 2012-06-15 21:39 게재일 2012-06-1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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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

지난 3월5일부터 시작한 글기지개가 어느덧 100일을 넘겼다. 몇몇 친구는 그새 공책 한 권을 다 써버려서 새 공책에다 글기지개를 쓰고 있다. 다른 친구들도 부지런히 매일 아침 글기지개를 쓴다. 주말이나 공휴일, 심지어 수학여행을 갔을 때에도 글기지개 공책을 들고 갔을 정도다. 밥 먹고 똥 누듯이 글쓰기를 습관화하려는 담임교사의 목표는 일단 성공한 것 같다. 앞서와 같이 아이들의 글기지개 몇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캠핑을 갔다.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화장실 앞에는 아저씨들이 줄을 서 있다. 터지려고 한다. 그런데 더 잔인한건 한 아저씨 당 20분이다! 터지는 줄 알았다. 아저씨를 위한 화장실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김현우의 `공중화장실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글기지개다. 주말을 이용해 부모님과 캠핑을 간 모양인데 `한 아저씨 당 20분`이라는 기막힌(?) 경험 때문에 자칫 터질 번했다는 내용이다. `아저씨를 위한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엄살이 웃음을 자아낸다.

“누나가 심각하게 숙제를 하고 있었다. 누나의 장점, 단점 100가지씩을 해가는 숙제였다. 장점과 단점 50개까지는 잘 적었는데 그 뒤부터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 수 없어서 정말 고민이다. 내가 알고 있는 단점을 이미 적었기 때문이다”

남건욱의 `누나의 숙제`라는 글기지개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100가지나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숙제를 낸 선생님은 이런 활동들을 통해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자존감을 높이길 바랐는지 모르겠다. 단점 50가지는 썼는데 나머지 50가지를 찾아내려고 끙끙댔을 누나와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건욱이 남매가 참 다정해보인다.

“어제 저녁에 엄마랑 운동하러 나갔다. 명진이 동생 명성이랑 배드민턴도 치고 줄넘기, 달리기 등을 했다. 그러다 한 쪽에서 쉬고 있는데 나뭇잎 위에 달팽이 3마리가 있었다. 달팽이는 제일 큰 암컷이 대장이고 수컷은 작다. 큰 암컷 위에 작은 수컷 달팽이가 올라가 있었다. 곤충도 대부분 암컷이 더 크다. 인간세상에서도 여자들이 더 세다! 아, 남자들이여!”

이동일의 `달팽이`라는 글기지개다. 동일이는 장래희망이 과학자다. 독서량도 많고 다방면에 아는 게 많다. 특히 동물과 식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 무얼 보면 척척 알아맞힌다. 엄마랑 운동을 갔다가 달팽이 가족을 발견하고는 곤충세상이나 인간세상이나 `여자가 더 세다`라는 진실(?)을 유추해냈다. 앞으로의 세상은 여성의 파워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리더쉽이 주목 받을 것이다.

“이제 6살이 된 내 동생 정원이는 밤마다 무서운 꿈을 꾼다며 어제 조금 울었다. 그래서 내가 “정원아, 어떤 꿈꿨는데?”라고 물었다. 나는 귀신이 나오거나 유령 같은 것들이 나오는 줄 알았다. 정원이는 “컴퓨터 로봇이 나와서 어떤 로봇이랑 막 싸웠어!”라고 했다. 아기는 아기이다. 나는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정원아, 너 무서운 생각하면서 잤지?”하니깐 “응”이라고 했다. 그래서 “정원아, 정원이가 좋아할만한 것들을 생각하면서 자. 알았지?”하니까 “응”이라고 대답했다. 어젯밤엔 정원이가 행복한 꿈을 꿨을 것이다”

김주원의 `동생은 아기가 맞어!`라는 글기지개다. 읽고 나면 자상하고 따뜻한 누나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밤마다 무서운 꿈을 꾸는 동생에게 네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며 자라고 말하는 누나가 참 대견하다. 주원이 말처럼 `어젯밤엔 정원이가 행복한 꿈을 꿨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환해진다.

짧은 글기지개지만 아이들의 생각과 생활을 알 수 있어 글기지개 읽는 즐거움은 여간 기쁜 게 아니다. 앞으로 자주 아이들의 글기지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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