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불꽃을 뚝뚝 꺾는다 손바닥이 타들어간다 물 대신 캄캄한 어둠이 출렁거리는 불꽃 항아리, 불의 밑 대궁은 얼마나 뜨거운 지 뿌리째 어둠이 들끓고 있다 섣불리 다가갔다가 데인 마음에 잡힌 삼도 화상의 물집, 부풀어 올라 쓰라리다 이미 숯이 되어버린 꽃과 아직 불이 되지 않은 어둠, 사이를 잇는 줄 하나가 끊어진다 이른 저녁 별똥별 하나가 보이지 않게 떨어졌음인가 여름 하늘을 다 태우고 모자라 붉은 혀를 널름거리는 서쪽은 핏빛이다
여름 한낮에 붉게 피어난 칸나, 타오르는 불꽃같은 짙붉은 그 빛깔에서 시인은 강렬한 생의 의욕과 욕망을 본다. 그러나 아무리 강렬한 의욕과 욕망으로 살아가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저물녘과 밤은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다. 그 의욕과 욕망이 강할수록 칸나. 그 짙붉은 꽃이 핏빛으로 스러지듯이 인생도 더 큰 아픔과 상처를 돌려받는 것이 아닐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