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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전통 우리의 휘호 글

권정찬 기자
등록일 2012-06-13 21:20 게재일 2012-06-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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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찬 경북도립대 교수·화가

오래 전의 일이다. 첫 개인전을 하고 그날 M화랑 사장님의 주선으로 대구의 대학교수들과 함께 대구의 유명한 한식집에서 식사를 하고 흥을 돋우기 위하여 즉석휘호를 하기로 했다. 모두 종업원들에게 하얀 치마를 입게 하고 그 위에다가 문인화를 그리는 상황이 됐다. 한 잔의 반주가 흥을 더하다 보니 그릴 곳이 모자랄 판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또 하나는 중국과의 교류가 시작되고 중국의 문화부 부주석과 대구의 작가 몇 명이 모여 역시 수성구의 어느 한식집에서 한잔하고 휘호대회를 했다. 술이 너무 과하다 보니 영 마음대로 화선지 위에 작품다운 휘호가 되질 않았다. 선발로 내가 먼저 닭의 해라서 닭 한 마리를 그려 중국작가들의 기를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닭대가리를 그리고 나니 더 이상 그릴 화선지의 공간이 없었다. 전지크기의 화선지인데 말이었다. 술 탓이었다. 그리고 그날 모두 흥이 넘쳐 어떤 이는 담을 기어 넘으려고 하는 경지까지 같던 모양이었다. 난초나 대나무 등 사군자는 물론이고 기명절지는 동양화의 휘호 소재로 예부터 사랑을 받아 왔다. 그리고 그러한 휘호는 능숙한 대가들만이 할 수 있는 대우인지도 모른다.

최근 중국을 자주 넘나들다보니 중국의 작가들과 항상 교류를 하게 됐다. 모두 부러울 정도의 멋진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당대의 대가급에 분류된다. 오관중제자, 제백석 제자를 비롯해 모두 일가견이 있는 작가들과 교류를 하면서 만날 때 마다 같이 휘호를 하고 흥을 나눴다. 어디 일대일로 만나서 하는 휘호가 아니다. 미리 제자들이나 지인들을 가득 불러놓고 지필묵을 대령하고 손님을 맞이한다. 그리고는 모두 서서 손님이 먼저 하는 휘호를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스승이 하는 휘호를 마치면 너나 할 것 없이 환담하고 흥을 나누며 기념촬영을 한다고 분주하다. 그리고 한 작품씩 나누어 소중히 기념으로 간직하게 한다. 다음 순서는 식당에서 식사와 반주를 곁들이면서 우리말로 “위하여”를 수십 번도 넘게 외친다.

그리고는 모두들 한국과의 교류를 원한다. 언젠가는 그들이 한국에서 만나면 어디에서 같이 휘호를 하면서 흥을 돋구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늘 해본다.

요즘 우리나라의 미술경기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영 엉망이다. 말 그대로 아파트값이 떨어지는데 누가 그림에 눈 돌릴 일이 있는가? 부동산이나 기업이 어려운데 누가 수집에 관심이나 갈까? 정답이다. 그래서 작가도 소장가도 모두 얼굴이 밝지 않다. 그러니 어디 휘호가 눈에 들어올까?

하지만 그 어려운 암울한 구한말이나 일정 때에도 선배서화가들은 모이면 막걸리 한잔에도 지필묵을 대령하고 서로의 심정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아무런 격식 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교류와 흥을 위해서라면 돈보다 휘호를 택했다. 친구나 사업가가 밥 한 끼를 사면서 내놓는 지필묵에 아무런 조건 없이 소매를 걷고 붓을 쥐었다. 그리고 즐겁게 휘호하며 웃고 할 말 안 할 말다하며 허심탄회하게 흥을 이어 갔다.

우리는 그러한 흔적(작품)을 보면서도 왜 못할까?

요즘 한국화는 다른 장르에 비해 더욱 정체성을 잃었다. 전통도 없고, 그렇다고 뚜렷한 방향이 설정돼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다가 외래화풍에 흠뻑빠져 동양화적 기초도 잃었다. 그러니 좋아하는 고객도 모두 떠난지도 모른다. 그래서 술 한잔에 흥을 내며 휘호할 엄두마저 못내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현실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처음 배울 때의 기초를 까맣고 줄 끊어진 연처럼 허공만 헤매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즉석 스케치 하나도 인색한지도 모른다. 어느 장소에서라도 망설임 없이 휘호를 쓱싹 할 수 있도록 된다면 주변의 지인들 모두 나의 팬이 될지도 모른다.

/권정찬

경북도립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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