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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갈등이 부른 산골마을 참극

최승희·이혜영기자
등록일 2012-05-31 21:37 게재일 2012-05-3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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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오빠같은 60대 남녀관계 지적 앙심<Br>50대여 뺨때리며 따지다 흉기에 피살
▲ 30일 오전 포항시 북구 죽장면 가사리 주민들이 사건 현장을 확인하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 /이용선기자

황금연휴를 하루 앞두고 많은 사람이 들뜬 지난 25일 밤, 80여 가구가 단란하게 모여 사는 포항의 오지마을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와 피의자는 어릴 적부터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오빠 동생같은 사이였지만 사소한 오해로 시작된 갈등이 둘의 운명을 바꿨다.

숨진 김모(53·여)씨와 김씨를 흉기로 찌른 배모(66)씨는 포항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북구 죽장면 가사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두 사람의 집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두 사람은 성인이 되면서 각자 타지에 살다 배씨가 홀몸으로 고향에 돌아온 5~6년 전부터 다시 만났다.

어릴 때처럼 여전히 오빠 동생 하며 지낸 둘 사이가 살인자와 피해자라는 끔찍한 인연이 된 것은 지난 25일 오후 9시.

죽장면에서 공공근로 일을 하며 노모(87)와 함께 살던 김씨는 이날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술기운이 오른 김씨는 문득 열흘 전 “왜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랑 다니느냐”고 말한 배씨의 말이 떠올랐다. 김씨는 미혼상태였지만 배씨가 오해한 것이었다. 평소 섭섭한 감정이 있던 김씨는 이날 배씨의 집을 찾아가 욕을 하고 뺨을 두 대 때렸다.

술 먹은 김씨를 “집에 가라”며 달래던 배씨는 10살 어린 동생에게 그것도 여자에게 뺨을 맞은 것에 격분했다. 그때 마침 마루에 있던 흉기가 눈에 들어왔다. 배씨는 그 흉기로 김씨를 찔렀다. 김씨는 마당을 몇 발자국 걷다 결국 담벼락에서 쓰러졌다.

김씨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기려고 범행에 사용한 흉기로 시신을 토막 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중풍으로 몸이 불편한데다 힘이 부족해 결국 허리와 오른쪽 겨드랑이만 훼손하고서 마당 한쪽에 농사용 비닐로 시신을 덮었다. 배씨는 범행 후에도 경로당을 왔다 갔다 할 정도로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범행은 사건 나흘 뒤인 29일 오후 2시께 드러났다.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 배씨로부터 수도 모터를 고쳐달라고 부탁받은 뒷집 남자가 이날 배씨 집에 들렀다. 이 남자는 마당에서 못 보던 비닐 덮개와 그 사이로 드러난 사람 신체 일부, 피로 보이는 빨간 액체를 발견하고 곧바로 마을 이장에게 신고했다.

김씨의 주검이 발견되기 이틀 전인 27일, 김씨의 노모는 딸이 며칠 소식이 없자 파출소에 가출신고를 했다. 이날 경찰은 김씨의 근무지와 집 근처 1km를 수색했지만 김씨를 발견하지 못했다.

마을의 터줏대감 최모(87)씨는 “배씨가 병을 얻고 5~6년 전에 부산에서 포항으로 왔는데 중풍으로 몸이 불편하고 말이 없는 성격이라 이웃들과 왕래가 없는 편이였다”면서 “20~30년 전 이복형제 간 살인사건이 있긴 했지만 절도사건 하나 없을 만큼 평화로운 동네였다. 동네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술이나 노름을 하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항상 훈계하는 모범적인 동네였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포항북부경찰서는 30일 살인 및 사체손괴 혐의로 배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김씨의 시신을 부검했다. 김씨 가족들은 31일 김씨의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최승희·이혜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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