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한국 정치의 구태의연한 틀을 부수는 일을 시작한다”며 최근 자신의 대권도전을 선언했다.
그는 “세력간·지역간 싸움이 아닌, 뺏고 빼앗기는 전쟁 같은 싸움이 아닌, 선거에 패자가 되더라도 떨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구태의연한 정치의 틀을 부수는 역할에 새누리당 대권후보들이 가세했다.
이재오 의원은 대선과 총선의 주기를 맞추고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정몽준 의원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고 국회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개헌에 찬성했다.
개헌요구에 대한 나름의 꼼수가 없지않지만 자신들이 살기 위해 죽기살기로 머리채를 휘잡는, 폭력이 난무하고 명패를 앞세운 인민재판식의 통합진보당에 비해서는 아주 신사적이다.
왜 개헌이 필요한가에 대해 국민들은 관심이 없다. 설령 개헌이 공론화된다고 해도 뭔가 `꼼수`가 있지않느냐는 것이 대다수의 시각이다.
하지만 정치판의 이전투구, 정치권력의 절대화 및 사유화에 따른 병폐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점에서는 뭔가 변해야 한다. 그것이 각 당이 앞세우고 있는 `쇄신`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 쇄신이 자기반성적인 측면이라면 헌법의 개정은 스스로 규칙을 새로 만들자는 것이다. 현재의 모순에 동의하고 새로운 룰에 합의하자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개헌논의는 국민적인 공감대 형성을 거쳐 반드시 실행돼야 할 부분이다. 돌이켜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도 현행 헌법구조상 정치폐해를 인정하며 개헌을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2009년 광복절 축사에서 선거구제 및 행정구역, 권력구조 개편으로 국한시키자는 의미의 `권력구조에 제한된 개헌`을 정치권에 던졌다. 2011년엔 `국회가 주도하는 포괄적 개헌`을 희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말인 2007년 1월 특별담화를 통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맞추는 `원 포인트` 개헌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개헌은 친이(親李) 세력이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를 무력화하려는 음모로 인식되면서 유야무야됐다.
노 전대통령의 제안 또한 대선을 앞두고 불리한 정치판을 흔들어 보려는 의도로 의심받는 `정치적 꼼수`로 묵살됐다.
그런데 지금 한국정치는 시대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와의 단절을 거부하고 있다. 그 중심에 현행 대통령제를 규정하는 헌법이 있다.
1948년 7월17일 초대 헌법 제정 이후 최장수 기록을 세우고 있는 현행 헌법은 1987년 10월 9차 개헌을 통해 탄생했다.
대통령 선출제를 간선에서 직선으로,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바꾼 요인이 됐다. 하지만 5년인 대통령 임기와 4년인 국회의원 임기가 일치하지 않아 선거가 줄줄이 계속되면서 대중영합적인 정책이 남발됐다. 또한 미래 권력이 부상하기 시작하는 대통령 임기 3년차부터 레임덕이 나타나는 등의 폐단도 날로 극심하다.
각론에서만 차이가 있었을 뿐 “바꿔야 한다”는 총론에는 이견이 없었던 개헌문제에 대해 정치권은 사심을 버려야 한다.
매번 정치권의 이해와 맞물려 정략적으로 이용됐던 경험이 있지만 이번 만큼은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이 개헌과정에 적극 초대돼야 하고, 여야는 물론 차기 대권주자 모두 당리당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술병 나발을 불며 담배를 꼬나물고 관광호텔에서 억대도박판을 벌인 조계종 승려들의 파계가 특정 종교·종파만의 문제가 아니듯 현행 대통령제에서의 폐해 또한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이 고스란이 뒤집어 쓰고 있는 한국 정치의 폐해를 비록 제도의 틀 속이지만 이 기회에 떨쳐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