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해변고등학교 은사님께

등록일 2012-05-11 21:21 게재일 2012-05-11 22면
스크랩버튼
▲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

스승의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교직에 몸담고 있어서 그런지 스승의 날이 조금은 남다르게 느껴진다. 벌써 대학생이 된 제자들의 얼굴이 스치기도 하고 청하, 구룡포, 죽장, 상옥 등지에서 쌓았던 크고 작은 추억들이 자르르 펼쳐지기도 한다. 많은 시행착오와 숨기고 싶은 과오가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겨우 10년 남짓한 경력이지만 그간 만났던 아이들과 부모님과 선생님을 헤아려 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들에게 최선을 다했더라면 좀 더 떳떳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스승의 날이 되면 아쉽고 그리운 복잡 미묘한 감정에 시달리곤 한다.

1996년 교대에 입학하고 나서 매우 놀랐던 게 한 가지 있다. 교육철학 시간에 `존경하는 선생님`이라는 주제로 토의했는데 놀랍게도 대부분이 그런 선생님이 없거나 심지어 떠올리기도 싫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제를 `반면교사`로 바꾸고 `적어도 이런 교사는 되지 말자!`라는 주제로 발표를 시켰더니 여기저기서 제보(?)가 쏟아져 나왔다.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교사, 촌지 원하는 교사, 권위의식에 젖은 교사, 이사장과 교장 눈치를 보는 교사, 학생에게 화풀이하는 교사, 문제집 정답만 불러주는 교사, 편애하는 교사, 신경질적인 교사, 혼자 떠드는 교사, 몇 년 동안 똑같이 가르치는 교사, 급소 치기나 고문을 즐기는 교사, 자기가 무슨 왕인 줄 아는 교사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교사가 강의실에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만났던 학부모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아이마다 담임복(福), 선생복(福)이란 게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무려 3년을 임시(기간제) 교사를 담임으로 만났다는 그 학부모는 자녀가 안됐다며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 얘기를 듣고 문득 교대에서 만났던 동기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담임복·선생복이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나는 어땠나?

필자부터 가만히 학창시절의 선생님을 떠올려본다.(다 함께 학창시절의 선생님을 한 분 한 분 떠올려보면 어떨까?)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은 참 다정했고 따뜻했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선생님 손을 잡고 코스모스 길을 걷기도 하고 마을 구멍가게에 가기도 했었던 것 같다. 4학년 때 선생님에게는 억울한 마음이 아직 남아 있다. 짝궁을 울렸다는 이유로 4학년 남자애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과한 손찌검을 했었다. 중학교 때 선생님 중에는 한용운 시인의 `알 수 없어요`를 멋지게 암송했던 국어 선생님과 입담이 좋았던 국사 선생님이 떠오른다. 국어 선생님 덕분에 시와 문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또 국사 선생님의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때 한국사와 세계사에 푹 빠지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떠올리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가 참 좋았다. 송도바닷가에 위치한 일명, 해변고등학교.(아쉽게도 현재는 용흥동으로 이전함)

거기서 고등학교 1학년 담임으로 김경로 선생님을 만났다. 중간에 재편성되면서 반이 바뀌기는 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은사님이다. 제자들을 데리고 청도 운문사며 영천 계곡으로 캠핑을 떠나기도 했다. 시를 쓰는 제자에게 시창작론 책을 몰래 선물해주시기도 하고 한 번씩 불러 어깨를 다독여 주시기도 했다. 참으로 넉넉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김연호 선생님, 김성찬 선생님, 박춘동 선생님, 양재호 선생님, 김태영 선생님….

해변고등학교 은사님들의 성함을 이렇게 부르니 가슴이 벅차다. 열정적이셨고 진실하셨으며 학생들에게 애정을 쏟으셨던 해변고등학교 은사님! 스승의 날을 맞아 큰절 올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아침을열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