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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교육의 의미

심한식기자
등록일 2012-02-27 21:38 게재일 2012-02-27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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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식 제2사회부

2012학년도 대학입시가 끝나며 각 학교와 지자체는 서울대 등 명문대학 진학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명문대 몇명 입학했다는 내용을 언론에 홍보하고 시가지 중심에 현수막까지 내건다.

명문대 진학률이 여전히 잘 가르치는 학교의 기준이 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

과연 명문대학에 많은 학생이 진학하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일까.

타동사인 `가르치다`의 사전적인 의미에는 `지식과 기능 따위를 일깨워서 알게 하다`와 `사람의 도리나 바른길을 깨닫게 하다`란 의미도 있다.

우린 후자의 의미보다 전자의 의미에 목을 매는 현실을 슬퍼해야 함에도 학력 지상주의를 찬양하고 있다.

일명 명문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서 많은 월급과 주위의 부러운 시선을 받아 보는 것에 청춘과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년의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것으로 전적으로 믿고 있다.

상아탑이라는 대학도 순수 학문을 배척하고 취직위주의 학문으로 강좌를 개설하는 편법에 앞장서며 지식과 기능에만 충실하고 있다.

하지만, 학력지상주의는 사제의 도리와 가정의 화목, 사회질서를 깨는 주범이 되었다.

제자가 스승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부권(父權)이 상실되고 부모의 관심이 경찰에 신고대상이 되어버렸다.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이웃을 돕고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를 실천했던 우리의 전통을 되살릴 수 없을까?

먹고살기 어려운 시기에 살던 우리의 조상도 교육의 큰 목적을 사람됨에 두었다. 인성과 우애, 측은지심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물질보다 위에 두었다.

이제 잘 가르치는 교육의 척도를 소위 명문대학에 얼마의 학생을 합격시켰는가가 아닌 세상에 태어날 때 가졌던 순수성을 잘 보존하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씨 등으로 바꾸어 보자.

수학공식과 영어 단어 외우기를 강요하지 말고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며 타인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인격수양의 공간인 학교로 되돌아가 보자.

경산/shs1127@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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