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학문 수양하는 이들이 있는 듯 조심조심…
포항에 10여년을 살면서 아직 한번도 못 가본 곳이 있다. 바로 경주 옥산서원인데, 지리적으로 경주에 있지만 사실 포항쪽에 더 가깝다. 대구~포항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이곳을 지나는 통행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영천쪽으로 특별히 가는 일이 아니고서야 좀처럼 이곳을 지나는 일은 드물어 버렸다. 안동이나 영주 등 타 지역에는 서원에 대한 관광객이 줄을 서는 편이다. 지리적 여건탓인지 아님 옛것에 대한 인식의 부족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깔려 있는 문화재에 대해 관심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문화재청이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 신청한 경주 옥산서원 등 조선 시대의 대표적 서원 9개소로 구성된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 확정됐다고 밝혔다. 해서 이번에는 제대로 맘먹고 경주 옥산서원으로 차를 몰아본다.
옥산서원은 역시 많은 서원들이 그러하듯이 지리적으로 산수가 빼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다. 포항을 벗어나 잠시 양동마을을 지나 안강쪽으로 달리다 풍산금속을 지나다보면 바로 옥산서원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운 곳이라 여겼지만 이만큼 가까웠나 싶었다. 우회전을 하여 서원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양옆 넓디넓은 들판을 끼고 쭉 곧은 왕복 2차선도로가 끝이 안보인다. 도로에는 양옆으로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어 늦가을이면 노란은행잎이 황금들판과 함께 장난 아니겠다 싶었다.
한 2km정도 달리다 보면 역시 산이 깊으니 숲도 깊고 물도 맑아 한눈에 보이는 경치가 수려하다 싶다.
먼저 마을에 들어선다는 느낌이 들때 큰 아름드리 나무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간간히 비가 오는 중이라 그런지 잠시 이어지는 비포장 도로가 정겹다. 잘 다듬어진 주차장에 차를 붙이고 바라보는 서원은 운무와 더불어 더없이 깊은 심산유곡의 신선이 사는 곳을 연상시켰다.
이곳은 여느 서원과 마찬가지로 공부하는 공간을 앞쪽에, 제사 지내는 사당을 뒤쪽에 둔 전형적인 `전학후묘`를 따르고 있다.
서원주변의 계곡은 숲이 우거지고 계곡이 깊고 물은 맑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많은 사람들이 찿는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먼저 계곡쪽으로 걸어가면 역락문이 나오고 그 앞에 슬그머니 누워있는 향나무를 지나 계곡으로 걸어가다 돌아보면 옥산서원의 전체 옆면을 볼 수가 있는데 황토로 만든 담이 일품이다. 담끝에는 세심문이 보이고 그 안에 이언적 신도비각이 있다.
다시 정문 역락문 쪽으로 돌아가 문에서 안을 들여다 보면 마치 여지껏 학문수양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처럼 조심조심…. 역락문을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학문이 트인다는데…. 이 정문은 화재로 소실됐다가 1839년 다시 세워 추사 김정희가 현판을 썼다고 한다.
서원 경내는 정문인 역락문을 비롯해 무변루, 강당인 구인당, 민구재와 암수재, 체인문 그리고 제기실이 갖춰져 있다.
슬쩍 정문인 역락문을 들어서면 바로 맞은편에 무변루 누각이 있다.
이쪽에서 보면 누각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창고같은 느낌이 들지만 안에서 보면 느껴진다.
아래가 막혀 있으니 더더욱 누각의 느낌은 없다. 그렇지만 현란한 단청의 청색의 문들이 상당히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보면 서원지기들이 거주하는 고직사라는 건물이 보이는데 황토색의 느낌이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게 한다. 이 곳은 식사 준비, 제사 준비, 서원관리 등을 하는 곳이란다.
아래로 내려가 무변루를 통해 들어서면 옥산서원이라는 현판이 보이는데 이산해가 쓴 현판이 소실돼 추사 김정희가 다시 쓴 현판이란다. 가운데 강당으로 쓰인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해립재와 양진재라는 온돌방이 있고 암수재뒤 오른쪽에는 회재 이언적 신도비각이 보인다.
또한 경각이라고 써 있는 장판각은 이언집의 문집 및 문적수가 가장 많이 보관돼 있는 곳이란다.
비를 맞으며 슬슬 몇 장의 스케치를 하고선 울창한 나무 숲길을 따라 다시 내려와 자계천다리를 건너 한 5분정도 차를 타고 올라 가면(걸어서 가면 더 좋을듯, 나는 비가 오는 관계로….) 보물 413호인 독락당이 나온다. 옥산정사라고도 하며 원래 이언직의 사랑채로 쓰였다고 한다. 이언적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6년간 학문에 전념하던 곳으로 경내에는 사묘, 어서각, 양진암 등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입구에 종갓집 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 곳의 특이한 것 중 하나인 흙으로 싸여진 돌 담벼락에 창이 나 있고 살창이라고 한다는데 시간 관계상 보지 못해 아쉬웠다.
전체적인 인상은 서원과 독락당까지 합친다면 상당한 규모로 느껴졌고 주변의 풍경이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수려한 경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독락당 주변에는 한옥집들과 또 다른 작은 서원들이 있고, 특히 전원주택들이 이처럼 많이 들어와 있나 싶을 정도로 예쁜 집들과 찻집들이 즐비했다.
가까운 포항 주변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언제 다시한번 김밥 한줄 싸서 보지못한 구석구석까지 스케치를 하기로 맘 먹고 서원을 떠나왔다.
한국화가 이철진은…
●현재 포항예술고등학교 교사, 동국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