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산책길에서 베어진 나무 한 그루가 있어 딸아이와 함께 그 앞에 앉아 나이테를 헤아린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렇게 어린 딸과 함께 잘린 한 나무의 나이테를 헤아리는 것. 그 안의 새를 꺼내오는 것. 몇 살 먹었니? 대답 대신 자꾸 말을 시키면 헷갈린다며 어린 딸이 아빠에게 타박을 놓는 것. 헤아린 나이를 잊어먹지 않기 위해 한 금, 한 금 손으로 짚어가는 것. 긴 세월을 다 헤아릴 동안 그저 잠자코 서 있는 것. 그 사이 잘려 없어진 내 몸 어느 곳이 자꾸만 가려운 것. 여기서 살아라! 나무의 텅 빈 방에 들어가 보는 것. 이 몸을 부른 것이 너인가 싶어, 지나던 솔바람과 높다란 둥지를 떠올려보는 것. 천천히 톱이 지나가는 내 몸속, 어린 딸의 몸속에 짙고 둥근 테가 둘러지는 것.
베어진 나무의 나이테를 헤아리며 가만히 인생을 관조하는 시인의 시안이 참으로 조용하고 겸허하다. 아무리 더 가지고 폼나게 살아가려해도 우리네 몸을 뚫고 지나는 세월은 어쩔수 없는 것이리라. 천천히 혹은 어느날 갑자기 휘익 톱이 지나가는 몸속은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어린 딸의 몸속으로 지티고 둥근 생명의 테가 둘러지는 것, 고운 생명의 순이 자라고 잎이 피어나는 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깊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