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크게 내색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친께서 춘추 91세에 돌아가신 충격이 컸다고 생각된다. 평소 건강하셔서 100세 장수하실거라고 믿고들 있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상경하는 차안에서도 무얼 어찌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개인생활은 물론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을 준 것은 2008년부터 지속되어온 경제불황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88만원세대로 불리는 청년층의 낮은 임금과 높은 실업률. 수출은 잘된다니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저조한 내수경기와 남유럽국가들로부터 시작된 재정위기의 영향이 얼마나 심하게 불어 닥칠지에 대한 조바심 속에 일년을 보낸 것 같다. 게다가 연말에 가까우며 북한의 김정일 사망소식을 접했는데, 다양한 전문가들의 논평에 앞서 일반시민들로서는 무슨 난리라도 일어나는 것이 아닌지 큰 근심 속에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필자의 아버지는 5형제이셨는데, 장남인 큰아버지는 해방도 되기 전 돌아가셨고, 둘째 큰아버지는 20년전, 삼남인 아버지는 반년전 돌아가셔서, 이제는 작은아버지 두 분이 생존해계신다. 새삼스럽게 아버지 형제들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이 세대가 우리 한국근대사의 치열했던 격동의 세월들을 모두 겪어낸 분들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큰아버지는 조선식산은행에 다니시던 전도 망망한 젊은이였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오려진 사진 한 장만이 전해질 뿐이다. 다른 형제들은 젊은 나이에 일제에 쫓겨 만주 등으로 도망도 다녔지만, 해방 후에는 고학으로 대학도 다니고 국가고시에도 응시하는 등 꿈들이 컸었는데, 6.25를 겪으며 피난지인 고향마을의 치열한 사상논쟁 속에서 또한 퇴각하는 인민군들이 불태워 죽이려 수백명 가둬놓은 농협창고에서 죽다들 살아나셨다.
아버지 형제들은 전쟁이 끝난 후 상경치 아니하시고 고향에 머물며 농사도 짓고 여러 직업에 종사하셨는데, 가난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의지 하나로 그 어려운 5-60년대 그리고 70년대를 본인은 굶으시면서 자식교육에 매진하셨다. 아버지 형제들은 그 당시 불어 닥친 새마을운동에도 열심이셨다. 암담한 일제시대를 거쳐 동족상잔의 6·25를 겪으며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던 우리 민족이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을 매우 기뻐하시던 부모님이셨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감옥에도 가고 군대도 끌려가는 것을 보시며 가슴아파하시던 분들이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필자는 부모님의 생각과 생활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경제난국이라면서도 절약이라고는 모르는, 명품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을 보고 무어라고 말씀하실까? 비슷한 동년배인 북한의 김일성이 죽고, 이번에는 그 아들 김정일이 죽고, 그 손자인 29세 김정은이 그 권좌를 이어받는 것을 보시고 무어라고 말씀하실까?
2011년 마지막 주를 보내며, 필자는 보름 예정으로 미국에 와있다. 여름과는 달리 기온이 좀 낮기는 하지만 초목이 푸르른 로스앤젤리스이다. 경제한파의 영향으로 연말연시의 미국경기도 어느 때와는 다르다. 지난 1년간 미국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기도 했다지만, 남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로 내년을 비롯해 당분간 미국경제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경제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어떠한 정책기조가 내수도 살리고 물가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설마 하는 사이 북한에 정말 큰일이 벌어지면 어찌 될 것인가?
아버지께서 생존해계신다 해도 큰 해답을 주시지는 못하실 것 같다. 하지만, 성실/인내/절약. 돈이 다가 아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마라.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을 차려야 산다. 여전히 이런 말씀들을 해주실 것 같다. 2012년 새해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지 예측할 게제는 못되지만, 어떠한 상황이 닥쳐와도 이 같은 선친의 말씀을 잘 견지해가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