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훌쩍 커버려 직장인이 되었지만 어릴 때는 할머니와 단둘이 가난하게 살았으므로 크리스마스가 가장 외롭고 쓸쓸했다고 하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였다. 그는 성탄절만 되면 다락방에 올라가서 라디오를 틀어 캐럴이 나오는 주파수를 맞추어가며 들었는데, 그러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혼자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 외로움과 쓸쓸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개비를 그었을 때 불꽃 속에 따뜻한 장면이 떠올랐듯이 캐럴은 가난하고 쓸쓸한 사람들에게 풍성한 꿈과 아름다움 따뜻함이 되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인지 모른다.
가까운 옛날에는 레코드 가게가 많이 있어 길거리마다 캐럴이 흘러나오곤 했던 기억이 난다. 12월 초만 되어도 벌써 캐럴이 넘쳐났었다. 상업적이다. 퇴폐적이다라고 사람들은 목소리들을 높였지만 그래도 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좋았다.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특히 어린아이들의 꾸밈없고 깨끗한 목소리는 눈과 사슴의 눈망울을 닮았다. 성탄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지 모르나 순수함과 신비함과 기쁨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노래로 이것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드물다.
캐럴은 1223년 성 프랜시스(St Francis. 1181-1226)가 마구간 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행사를 열었을 때 부른 춤과 노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캐럴(Carol)은 원형무용곡(둥근 원을 만들어 추는 춤곡) 이었다. 프랑스에서 싹튼 캐럴은 15세기 영국으로 건너가 유행하여 대중가곡이 되었다. 그때 크리스마스를 음악의 주제로 삼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관계없었던 캐럴이 결국 현재의 `크리스마스 캐럴`이 되었다. 춤곡에서 유래했으므로 경쾌했으며 내용은 종교성을 담고 있어 동전의 양면처럼 종교성과 세속성이 붙어있는 장르로 지금까지 발전해왔다. 지금 부르거나 들려지는 캐럴 중에 교회용과 세속용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 것도 그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나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참 반가운 신도여` 같은 곡은 교회용이고, `징글벨`이나 ,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라파팜팜` 같은 곡은 세속용이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초기 캐럴과 이후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한 교회 캐럴은 17세기에 일어난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한때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다가 1831년 J. W. Parker 에 의해 크리스마스 캐럴집이 출판되었고, 파커의 이 캐럴집이 크게 유행하면서 캐럴이 사람들 사이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저들 밖에 한밤중에-The first Noel` `천사 찬송하기를` 같은 곡이 이때 등장하였다. 이후 팝송 형태의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같은 곡이 나오면서 현대화되었다.
12월의 거리에 캐럴이 줄어든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닌 것 같다. 가난한 마음을 풍성하게 하고 추워서 쓸쓸한 거리를 따뜻하게 채워주던 캐럴을 다시 틀면 어떨까. 그나마 해마다 트리를 장식하고 불빛을 밝혀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올해는 북한을 향해 비무장지대 가까운 곳에 작년보다 2개나 더 높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운다고 한다. 경쾌하고 아름다운 캐럴도 북한 방방곡곡에 울려 퍼지는 날을 기다려본다. 예수 탄생의 의미를 굳이 연결하지 않더라도 그래서 세속적인 음악이라 하더라도 마음을 풍성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그런 캐럴이 비무장지대를 너머 동토에도 깊이깊이 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