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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2-09 23:58 게재일 2011-12-0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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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시인·포항교육청영재교육원 팀장
2006년 2월, 뉴욕에서 열린 백남준의 장례식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400여 참석자들이 서로의 넥타이를 잘라 관에 넣었다. 그날 `넥타이 자르기` 퍼포먼스를 제안한 백남준의 조카 켄 백 하쿠타는 `넥타이`라는 고루한 상징을 통해 도발과 전복의 예술혼으로 빛났던 삼촌을 기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미 1960년 독일 공연에서 백남준은 전위작곡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른 적이 있었다. 또 피아노를 때려 부수거나 바이올린을 질질 끌고 다니기도 했다. 백남준은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으며,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연주할 뿐만 아니라 때려 부수거나 질질 끌고 다닐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그를 말할 때 비평가들은 `도발`, `전복`, `혁신`, `환상`이라는 낱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백남준을 지칭하는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 `환상세계의 여행자`, `비디오 철학자`, `시간과 영상의 마술사` 등의 다양한 이름들도 그의 진취적인 실험정신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실제로 많은 비평가가 196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예술가 중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혁신적인 인물로 백남준을 뽑고 있다. “콜라주 기법이 유화물감을 대신했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라고 공언했던 백남준은 비디오에서 현대예술의 변화무쌍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도구의 변화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일찍 간파한 것이다. 미답(未踏)의 영토를 개척한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설치작품은 1980년대 들어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오늘날 세계적인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다.

반면, `김미루`라는 이름은 낯설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사진작가다. 도올 김용옥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붙는데, 사족(蛇足)이다.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누드 퍼포먼스와 사진작품은 스스로 주목받을 만하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죽은 쥐를 사진에 담으면서 전혀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용도 폐기된 지하철 터널, 지하묘지, 공장, 하수구와 같은 도시의 환부(患部)를 돌아다녔다. 나는 그곳에 매료되었다”

2007년 7월, 김미루는 `어둠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뉴욕타임스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앞서 영국의 데일리메일에서는 그녀를 `예술을 위해 벌거벗은 탐험가`라고 소개했다. 지난 3월에는 `돼지, 고로 나는 존재한다(he Pig That Therefore I Am)`라는 누드 퍼포먼스를 선보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미술관 앞에 마련된 돼지우리에서 돼지 2마리와 나체로 104시간을 지내는 누드 퍼포먼스를 관람객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그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어둠에 대한 두려움, 위험함에 대한 두려움, 더러움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미루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후 미술대학원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회화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또한 철학자이자 아버지인 도올의 영향으로 도교와 불교에도 관심이 깊었다.

백남준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갔다면, 김미루는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길`을 가고 있다. 미답의 길은 언제나 외롭고 쓸쓸하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끝 간 데까지 가본 자만이 알 수 있다. 백남준을 기리는 것은 그가 끝까지 간 자이기 때문이다. 가끔 김미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녀도 끝까지 가겠구나!`라는 예감이 든다.

12월은 대입을 앞둔 청소년을 비롯해 많은 직장인이 진로와 이직을 고민하는 계절이다. 삶은 비디오처럼 반복, 멈춤, 빨리 감기, 되감기를 할 수 없다. 오로지 재생될 뿐이다. 수많은 `숫눈길` 앞에서 고민하는 많은 청춘들에게 폴 발레리의 이 말은 어떨까? “용기를 내어 그대가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저만치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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