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법고시`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사법고시란 출세와 성공의 좁은 문을 상징한다. 그 좁은 문을 통과해 대한민국 1%로 살아간다는 건 크나큰 명예이자 권력이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과 평검사가 벌인 토론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의 노 대통령과 정말로 막갔던 젊은 평검사들의 기세등등함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삼권의 하나인 사법권을 집행하고 구현한다는 명예와 권력의 아우라가 그들을 감싸고 있는 듯 보일 정도였다. 그들이 가지는 자부심 이를테면, `정의 실현`과 `공정사회 구현`의 가치는 마땅히 존중되고 또 존경받아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벤츠 여검사`사건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백(bag) 값 보내!”라는 벤츠 여검사의 휴대폰 문자는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상식을 초월한다. 지난해에는 `그랜저 검사`, `스폰서 검사`, `정치 검사`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국민들 사이에 `렉서스 검사`, `BMW 검사`, `람보르기니 검사`사건이 곧 터질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고 있으니 그야말로 참담하다. `검사(檢事)스럽다`라는 신조어도 있다. “행동이나 성격이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논리 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데가 있다”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는 선견지명(先見之明)인 데가 있었다.
물론, 일부 검사들의 얘기다. 촌지를 받는 교사도, 부정부패를 일삼는 공무원도, 밥 먹듯 거짓말을 해대는 정치인도 일부다. 그 외 다수는 높은 도덕성과 소명의식으로 맡은 바 책무를 다하고 있다. 그래서 나라가 돌아가는 것이다. 다만 판검사의 비리에 더 뭇매를 드는 것은 그들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칼을 가졌기 때문이다. 교사의 비리에 여론이 들끓는 것은 그들이 아이들의 영혼에 흔적을 남기는 직업이기 때문이듯이 말이다.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조합해보면 검사의 비리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 차원이라고 한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고 중대한 현안이다. 실제로 그들 자신이 아니고서는 검찰을 견제할 아무런 장치가 없는 실정이다. 비리가 터질 때마다 자정과 쇄신을 외쳤지만 제 식구 감싸기와 특권의식, 집단이기주의의 철옹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사법부의 비리와 정치적 편향은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앙을 가지고 온다. 한 인간이 끔찍한 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우리의 이웃과 집단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우리 자신과 이웃, 자손을 위해서 국가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사법권을 행사하는 이들의 높은 도덕성과 인성 검증의 객관적 방법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사법고시 합격 축하합니다!”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달력을 보니 총선과 대선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