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서원은 대부분 읍락에서 멀리 떨어진 조용하고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았고 서원의 중심이 되는 강당의 위치는 멀리 안산(案山)이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여 원생들이 이를 보고 뜻을 크게 함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했다.
안동 풍천면에 있는 사적 제260호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서원인데, 선조 5년(1572) 서애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을 현 위치로 이건한 것이다. 1607년 서애가 타계하자 후학들이 1614년 사당을 세워 그의 위패를 봉안하고 서원 앞에 흐르는 낙동강 건너편에 절벽으로 이루어진 병산(屛山)의 이름을 따서 병산서원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병산서원의 정문인 복례문을 들어서면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만대루(晩對樓)가 동서로 길게 서있다. 만대루는 누각(閣)으로 꾸몄고 누각 2층의 누마루는 통칸 마루로 마루 주위에 계자각난간을 돌렸다. 누각 하부를 지나 중정측으로 계단을 오르면 강학공간인 입교당(立敎堂)이 있고 중정 좌우에 동ㆍ서재가 마주보고 서있다. 입교당 동측을 돌아 들어가면 사당인 존덕사(尊德祠)가 있다. 서원 건축은 중심축선상에 외삼문-누각-강당-내삼문-사당 순으로 배치하는 것이 보통인데 병산서원은 사당이 중심축에서 벗어나 있음이 특이하고, 강학공간을 전면에 두고 제향공간을 배면에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성을 하고 있다.
서원건축의 중심이 되는 강당의 평면구성은 중앙에 대청을 두고 그 양측에 온돌방을 설치하는 형식이 가장 많다. 강당은 일반적으로 당(堂)으로 이름 짓고 서원의 이름을 쓴 편액을 걸어둔다. 한편, 서원에서 신문(神門)은 제향공간의 정문을 뜻한다. 신문은 서원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문이기 때문에 정문인 외문에 대하여 내문이라 하며 3칸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내삼문(內三門)이라 한다. 내삼문의 가운데 문은 신문으로 제향 시 제관(祭官)과 제수(祭需)만이 통과할 수 있고 평상시에는 서쪽 문을 열어놓고 출입을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한 번씩 내려와서 쉬었다 가기도 했던 서원 누각에는 당시 베고 누웠을 목침이 있다. 오래전 병산서원 앞 강변 솔밭에서 동료교수 가족들과 1박 2일을 함께 했었는데 장성하여 출가한 자식들이 당시를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어 청소년들에게 조상들의 얼을 보여줄 수 있는 교육장으로도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