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들고 혼자 여기저기 어림짐작으로
물어물어 애타게 내가 찾아간 거지
첫 만남의 순간부터 나는 광신도가 되었는데
꼭 무슨 단추 같았네 아니면 천년 신라로 들어가는 배꼽이라고 할까
화려한 석장승 대신 나무 몇 그루 둘레둘레 세워두고
보문 들판 지나 낭산(狼山)을 건너다보며
단촐하게 자리잡은 그대가 있어, 릉 드넓은 보문벌이 하늘 위로 휘-익 날아가지 않고
신라 서라벌이 서라벌로 그냥 남아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남의 이목(耳目)을 던져버린 그대
내 눈을 옹골차게 붙들어매고 있다
가만 그대 옆에 앉아 있으면 길이 사라진다
시간을 지워버린 고요 속으로 날 굴려갈 것만 같은 그대
왕릉 앞에 서면 시간을 느낀다. 화려했던 한 시대를 살다간 신라 27대 진평왕릉은 왕릉이라기에는 규모나 치장이 화려하지 않은, 너무도 수수한 느낌을 준다. 들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왕릉에서 시인은 또 하나의 허물어지지 않는 시간을 느끼고 있다. 영원으로 가고 있는 시간들이 거기 단촐한 왕릉에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요한, 평평히 흐르는 시간 속에 신라왕 진평도 우리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