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100km 떨어진 포항. 바닷내음이 코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 것이다. 이제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 할 곳을 찾아야 한다. 오늘 아침은 무얼로 먹을까. 사실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그만큼 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끼니를 때우는 것으로 결정했다. 식당에서 먹는 음식이 양념이 다르고 식재료가 달라서인지 뒷맛이 다르다.
밤이면 1시간마다 깨어지는 불면이 찾아온다. 집을 떠나서, 잠자리가 바뀌어서일까. 적당한 시간, 대구 집으로 전화를 건다. 밤 새 안녕이라는 보고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맨얼굴을 보고 그냥 눈짓으로 하다가 기계음으로 바꾸고 보니 갑자기 거리감이 생겨난다. 지구 반대쪽서 하는 느낌이 든다.
포항에서도 대구에서의 일과와 시간대가 비슷하다. 아니 같다. TV 연속극도 스포츠중계도 화면속은 다를 바 없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확대 재생산하고 그렇게 소통한다. 대구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나누던 사적인 통화가 포항에 왔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 서울이나 울산에 있는 내 친구들은 내가 대구 아닌 포항으로 옮겼는지도 모른다. 대구에 있는 주변 사람들도 내가 포항으로 옮겼는지도 모르고 알더라도 사실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
사실 디지털 시대가 본격 열리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을 넘어 다른 세계로 자유롭게 넘나든다. 미래의 어느 별이 되든지 또는 과거 중세시대 지구의 어느 대륙이 되어도 좋다. 그렇게 생각 뿐 아니라 구체적 상황이 편하게 움직여지는 곳이 디지털 노마드다. 실시간 공간을 초월해서 화상 전화 뿐 아니라 다자간 회의를 하고 같은 주제를 놓고 생각을 공유하기도 한다. 빛의 속도로 정보를 획득하고 생각을 교환하고 의사를 결정한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인터넷과 모바일, 휴대용 컴퓨터 등 첨단 디지털 기기로 무장한 현대의 유목민은 더 이상 한 곳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고 21세기 사전에서 이야기했다. 말하자면 하이퍼 신인류다. 더 이상 먹고 살기 위해 어느 곳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졌다. 즐기면 되는 것이다.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신인류가 된 것이다.
기동력을 앞세운 몽골 칭기스칸은 풍족한 남부의 정착민들을 무력으로 정복해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당시 유목민들에게는 뿌리내릴 토지나 생활을 뒷받침해 줄 세간살이가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스피드와 힘만이 종족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밤하늘 별을 보고 천기를 점치며 바람의 세기나 방향으로 계절을 느끼던 유목민에게는 자연에 종족의 운명을 맡겨야 했다. 우리 선조는 북방 기마민족이 남방 농경민족을 정복하고 정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고 보면 내게도 그런 유목민의 DNA가 감춰져 있었던 모양이다. 아날로그식 물리력이 디지털 시대엔 정보로 바뀌었고 그 힘을 디지털 기기가 대신하고 있다. 구태여 수고하지 않아도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는 것이 디지털 노마드의 힘이다. 화상 전화로 해외에 있는 친구와도 넋두리를 주고받는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내 몸은 포항에 와 있다. 아무리 공간을 초월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바닷바람을 재생하고 음식맛까지 재생할 수는 없다. 그 씹는 맛이나 목구멍을 넘어가는 식감까지 만들어 낼 수는 없을 터이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라지만 타향살이는 역시 아날로그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