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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1-18 23:02 게재일 2011-11-1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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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포항장성요양병원장
19세기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65세에 은퇴하는 것`을 법제화했는데, 그 시대의 평균 수명으로 보면, 일생 동안 직장생활이 가능했다.

오늘날은 의학의 발전 등으로 수명이 연장돼 장수가 가능하다. 즉 은퇴이후에도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은퇴생활은 조용히 앉아서 쉬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 은퇴자에게 흔들의자를 선물하는 것은 큰 결례가 된다.

그 나이에는 이후로도 기나 긴 삶을 앞에 두고 있으므로, 일찍이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은퇴자가 되는 것은 현실에서 도피나 가출이 아니라, 노후의 길고 거대한 삶이라는 여행의 일부분으로서, 하나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나이를 말한다.

노인은 절반이 비어버린 잔이 아니고, 절반이나 찬 잔을 말한다. 지금도 잔의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재 상황을 잘 이용해야 한다. 10층에서 추락하여 각층을 지나면서도, 땅에 부치기 전까지는 층을 지날 때마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아직 거리(시간)가 남아있어!”라고 하는 깨어 있는 정신이 필요하다.

은퇴 이후는 인생에서 정리를 위한 중요한 기간이지만 섭섭하게도 인생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 준비가 없으면 누군가에겐 차가운 한 겨울 밤에 길 잃은 나그네 같을 수도 있고, 또는 뜨거운 사막에서 물을 찾아 헤매는 자가 될 수도 있다.

은퇴 이후 기간을 마치 휴가처럼 생각한다면 큰 실수다. 긴 휴식 기간이 아니다. 빈 시간을 메우는데 노력하지 않으면, 진실로 그때는 매일 매일이 공휴일이나 일요일로 변해 버린다. 날마다 우중충하고 공허를 느낀다. 가고는 싶으나, 오라는 데가 없다.

그러나 인생에서 은퇴기간을 잘 이용하면 온전한 자유를 갖게 되는 특혜 받은 기간이 될 수도 있다. 노력하면 일생 중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간을 만들 수도 있다. 준비를 잘재면 그 노인은 그의 생애에서 황금기가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노령의 배우가 주로 조용한 단역을 맡지만 주역을 맡는 경우도 더러 본다. 인생살이에는 노년이라도 나의 배역, 역할, 할 일이 있다. 그러므로 은퇴자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타인에게 이바지해야 하는 배역을 맡을 생각을 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는 사회에서 봉사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 시간을 나누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보통 오랜 시간 또는 평생이 걸려야 겨우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시간의 할애는 과거에 그가 어떤 직업과 직위였는가 와는 무관하게, 평등성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영역이다. 제공한 시간의 양이나 활동의 질 만이 문제가 된다. 노인에게 있어서 이런 종류의 일은 젊은 시절만큼 할 수 있다.

봉사자가 갖고 있는 마음의 넉넉함은 할애한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크게 감동시킨다. 봉사의 기쁨을 느끼는 강도는 요청이 있을 때 그곳으로 달려가는 속도와 비례한다.

나이든 사람들은 혼탁해지는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사랑과 선함이 되돌아오도록 하는 기술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노인이라는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자기에게 후회를 안겨 주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데 노인도 마찬가지이다.

퇴임을 한다는 것은 연회석상에서, 과일이나 과자 등 후식을 먹는 뒷부분의 시간이다. 은퇴란 인간의 삶에서 사랑의 불꽃을, 늙은 후기에 다시 한 번 점화하는 때다. 이때는 사랑을 정열보다는 이성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며 이로서 마무리 역할을 잘 담당하게 된다. 늙은 후에 전개되는 새로운 삶에서 가능한 한 의미 있는 내용을 가지도록, 평소에 좋은 방법으로 채곡채곡 채우도록 노력하자.

인생은 은퇴하면서 멈추거나 끝나는 게 아니다. 인생의 후반부이지만, 이제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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