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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1-18 23:42 게재일 2011-11-1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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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시인
돼지는 돌고래나 원숭이만큼 영리하며 깔끔하다. `동물 행동`이라는 학술지에 따르면, 먹이를 숨긴 장소를 기억하거나 거울에 비친 모습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이해하며 먹이를 찾을 줄 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인식하는 동물은 돌고래, 원숭이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돼지가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오해와 편견도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비롯됐다. 몸을 식힐 수 있는 땀샘이 없어서 돼지는 진흙탕에서 자주 뒹군다. 물론 멧돼지의 얘기다. 우리가 흔히 쓰는 돼지는 가축화된 멧돼지를 가리킨다. 집단사육을 위해 `우리`에 갇힌 돼지가 몸을 식힐 방법은 오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그러면서 `더럽고 지저분하다`라는 누명도 동시에 뒤집어쓰게 됐다.

돼지의 가축화는 근동 또는 중국에서 멧돼지를 기르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됐지만 가죽은 방패, 뼈는 도구와 무기, 털은 솔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했다. 이처럼 인간에게 유용한 돼지가 인간의 유전자와 흡사하다는 연구 결과는 자못 흥미롭다. 일리노이대학 로런스 슈크 교수는 “돼지의 심장, 치아 등은 인간과 유사하고 거짓말도 하고 알코올도 섭취한다”고 말했다. 돼지의 방광 추출물이 탁월한 재생능력을 가졌다는 사실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돼지의 췌장을 이식해 당뇨병 완치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으니 그야말로 돼지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물(貴物)이다.

`돼지`는 수많은 신화와 설화, 문학, 예술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유리왕 21년의 기록에 따르면, 하늘에 제물로 바치려고 기르던 돼지가 달아나니 왕이 신하를 시켜 뒤쫓게 했다. 신하는 국내성 위내암에서 돼지를 붙잡은 뒤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산수가 깊고 험하며, 오곡을 심기에 알맞고 물고기 등이 풍부합니다. 국도를 옮기면 좋겠습니다” 왕은 직접 가서 지세를 보고 도읍을 옮겼다. `고려사`에도 고려가 뒷날 돼지가 누운 곳으로 도읍지를 옮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토황소격문`과 `계원필경`으로 유명한 최치원이 금돼지의 아들이라는 설화도 전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돼지는 대체로 부와 복의 상징이다. 반면에 서양은 돼지를 자만, 탐욕, 육욕, 질투, 폭식, 분노, 태만 등 일곱 가지 죄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신약성서`에 예수가 악한 귀신들을 돼지 떼에 들러붙도록 허락한 `거라사 돼지` 이야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1952년 출간된 엘윈 브룩스의 동화 `샬롯의 거미줄`에서 꼬마 돼지 `윌버`는 거미 `샬롯`에 의해 `대단한 돼지`, `근사한 돼지`, `눈부신 돼지`로 거듭난다. 사랑스럽고 영리한 꼬마 돼지 `윌버`의 이미지는 독자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어서 1972년 발표된 로버트 뉴턴 펙의 자전소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작품이다. 1920년 대공황의 그늘이 짙은 미국 버몬트 주의 한 시골에서 펼쳐지는 한 소년의 성장기는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을 준다. 주인공 로버트가 태너 아저씨에게 선물로 받은 아기 돼지 `핑키`는 순백처럼 하얀 몸에 사탕처럼 달콤한 핑크빛이 감도는 돼지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소유해본 로버트는 온갖 정성으로 `핑키`를 돌보지만, 어두침침한 12월의 어느 이른 아침, 궁핍한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빠와 함께 `핑키`를 도살한다. `핑키`의 죽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로버트는 부쩍 성장한다. 로버트가 열세 살이 되던 해, 헛간에서 숨을 거둔 아빠를 발견하고도 로버트는 의연하게 말한다. “괜찮아요. 오늘 아침에는 푹 주무세요. 일어나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아빠 일까지 다 할게요. 더 이상 일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 푹 쉬세요” 그날 하루만큼은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는 날이었다.

한미 FTA 비준을 앞두고 온 나라가 옥신각신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의 농축산 인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 예사롭지 않게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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