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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게무샤`를 다시 생각한다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1-17 23:25 게재일 2011-11-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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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일본의 유명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가 만든 영화중에 `카게무샤`라는 게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 대중문화를 수용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선을 보인 일본영화가 바로 이`카게무샤`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6세기 중엽, 일본에서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해지자 각 지방의 영주들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인다. 이른바 전국시대 말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오다노부나가와 다케다 신켄이 그들이다. 이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250년 에도 막부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우리들에게도 낯익은 인물이지만, 이 영화의 주 무대는 다케다 신켄 집안이다.

다케다 신켄은 `산과 같다`는 풍설처럼 굳건한 무장이다. 그러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성을 공략하다 저격을 받아 죽게 된다. 용맹 무쌍한 다케다 신켄의 죽음은 이 집안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 없는 탓에 그의 가신들은 `카게무샤`를 내세우기로 한다.

여기서 이`카게무샤`란 그림자 무사란 뜻이다. 일본에서는 암살이나 저격이 심했던 탓에 진짜를 대신하는 가짜를 내세워 진짜를 보호하곤 했다. 다케다 신켄이 죽게 되자 가신들은 그를 닮은 가짜를 내세워 아직도 그가 살아 있는 양 꾸며 위기를 모면하고자 한다.

이때 죽은 영주를 꼭 닮은 까닭에 `카게무샤`로 선택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무식한 좀도둑에 불과한 자였다. 영화에서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비천한 신분의 좀도둑이 어떻게 나면서부터 엄혹한 훈육 과정을 밟은 다케다를 대신할 수 있는가?

비록 `카게`라 해도 생긴 것만 영주 같아서는 영주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다케다의 그림자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행동거지, 마음속까지 다케다에 가까워져야 한다.

다케다는 자신이 죽은 이후의 사태를 염려해서 자신의 죽음을 3년 동안 비밀에 부칠 것, 함부로 병사를 일으켜 움직이지 말고 영토를 굳건히 지킬 것을 주문했다. 좀도둑에 불과한 카게가 과연 이 과업을 완수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카게에게 자신감이 붙는다. 그러자 불행이 찾아든다. 다케다 신켄만이 탈 수 있다는 말 위에 올라타다 그만 부상을 입게 되고, 이 사건 때문에 카게의 본색이 탄로나고 만 것이다. 다케다 신켄이 어떤 전투에서 입은 칼자국이 카게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카게는 쫒겨나 좀도둑 신세로 돌아가고 다케다의 어리석은 아들 카쓰요리는 병사를 일으켜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의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 병사 2만5천명을 이끌고 나카시노 벌판으로 향한다. 이 전투는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케다 신켄이 자랑하던 기마부대를 저편 연합군의 총이라는 신병기 앞에 맥없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장려하면서도 허무하다. 그러면서 과연 가짜는 어디까지 진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출해 놓는다.

가짜는 자신을 진짜로 간주하고 그 생각을 밀고 나가 신념에까지 이르고 마침내 자기 최면을 걸 정도가 되면 진짜가 될 수 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예를 들어 공부를 잘 안 하고 또 못하는 교수가 있다. 그런데 이 교수는 진짜가 되고 싶다. 그런 학문 수준에 도달하고 싶다. 또는 진짜로 대접 받고 싶다. 학계에서 뭔가 있는 사람으로 행세하고 싶다. 또 자신이 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을 학식 높은 교수로 믿기까지 한다. 그럼 그 사람은 진짜 그런 교수가 될 수 있나?

그럴 것 같지 않다. 어제였던가? 안철수 씨가 지금으로 쳐서 15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사회를 위해, 불우한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내놓겠다고 했다. 이`무서운` 행동 앞에서 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가짜는 결국 가짜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돈`의 문제를 놓고 우리 사회는 지금 누가 진짜인가 하는 질문을 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 흥미로운 시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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