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회의 古典조차 강의 못하게 하는 사회. 이 땅의 깨인 사람들아! 모두 투표장으로 가시요!`
그러니까 도올은 언론들이 박빙 승부라고 예측한 서울시장 투표일에 거기 나와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서양 고전에 통달한 것으로 알려진 늙은 교수가 무슨 사연으로 고독한 시위를 벌여야 했던가? 그의 EBS 특강과 관련된 일이었단다. EBS와 도올은 본디 `도올 김용옥의 중용, 인간의 맛` 강의를 36부작으로 가자고 약속했는데, 갑자기 EBS가 도올에게 절반으로 줄여 18부작으로 조기 종영하겠다고 통보했단다. 그 이유는 `거친 표현 및 특정 종교에 대한 비방`이라 했다.
도올의 그 강의를 전혀 듣지 않은 나로서는 얼마나 표현이 거칠었고 얼마나 특정 종교를 비방했는가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한다. 다만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고독하게 서 있는 도올의 모습은 이미 중용(中庸)의 도나 중용의 인간적인 맛으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필이면 서울시장 투표일만 골라서 `투표장으로 가시요!`라는 퍼포먼스를 벌였으니 한낱 정치적으로 계산된 몸짓에 불과해 보였고, 이른바 범야권이든 범진보든 그들을 향하여 “나는 변함없이 당신들의 동지이니 나를 기억하시요!”라는 침묵의 고함으로 들려오기도 했다.
이른바 `스타`의 언행에는 마치 자기 성감대에 강렬한 자극을 받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대는 디지털세대의 재바른 손가락들이 도올의 그 사진에다 `한마디 재담`을 달아서 SNS라는 사이버세계로 얼마나 퍼 날랐을까? 나도 경악했던 `나경원의 1억원 피부마시지`만큼 퍼 날랐을까? 그러나 이쯤에서 도올에게 보내려 했던 너무 늦어진 질문을 던져야겠다.
“도올 교수님.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기였지요. 그때 당신은 노 대통령 평양방문단 일원으로 평양에 갔지요. 가서, 민노당 당수와 함께 평양 권력자들이 자랑해대는 `아리랑축전`을 관람하지 않았습니까? 그 소감을 당신은 서울의 한 신문에 기고했지요. 그날 그 신문을 뒤져보면 다 나오지만, 당신은 북한 어린이들과 소년소녀들이 일사분란하게 이뤄낸 거대한 카드섹션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당신의 그 글을 읽은 그때, 나는 분노해서 다음과 같이 묻고 싶었습니다. 도올 교수님, 당신에게도 어린 손자나 손녀가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의 귀한 따님이 서울 어느 호텔에서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지금쯤 당신의 손자손녀가 몇 살인지 궁금한데요, 가령 평양의 카드섹션 조련에 동원된 그 또래라고 합시다. 만약 한국에서 당신의 귀엽고 귀한 손자손녀가 공부고 놀이고 뭐고 다 박탈당한 채 몇 달 동안이나 땡볕 운동장에 동원돼서 `조국의 명예를 위하여` 가끔 오줌까지 싸가면서 병사처럼 혹독하게 그 위대한 카드섹션 조련을 받고 있다면, 정말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할아버지 도올은 손자손녀의 인권을 위하여 1인 시위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는, 천인공노하는 군사독재정권의 아이들 인권침해`라 외치며 더 주목 받는 퍼포먼스를 벌여야 마땅할 것이다. 만약 도올이 그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경우는 비겁한 할아버지고 찬성하는 경우는 나쁜 할아버지겠는데, 광화문 광장에서 그런 시위를 할 수 있는 이 나라는 결코 그따위 카드섹션을 위해 어린이들과 소년소녀들을 기만하거나 박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