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베어 물면 새콤달콤한 즙과 함께 입속의 씹는 즐거움, 풍부한 향을 가져다주는 이 사과는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사의 측면에서 중요한 장면에서 항상 등장한다. 그 첫째가 아담과 하와가 따먹으므로 죄를 범하게 된 선악과이다. 이 선악과가 사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사과의 원산지가 흑해와 카스피해에 연한 코카스서 지방이며 에덴동산으로 추정하는 곳과 멀지 않은 지역이다. 사과는 이 원산지로부터 유럽과 아메리카 아시아 및 전 세계로 천천히 퍼져나갔다. 둘째로 독일의 극작가 J.C. 프리드리히 폰 실러가 쓴 희곡 `빌헬름 텔`을 통해 널리 알려진 스위스 활의 명수 윌리엄 텔의 사과 이야기이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통치에 대항하다가 자기 아들의 머리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석궁으로 쏘아야 하는 위기상황에 놓이게 된다. 아들을 죽이지 않고 사과를 맞춰야 하는 그 긴장된 상황에서 극적으로 승리하게 된다. 이후 이 이야기에 고무된 스위스인들이 봉기하여 오스트리아로부터 해방 돼 윌리엄 텔의 사과는 자유를 상징하게 된 것이다. 셋째로 뉴턴의 사과이다. 뉴턴은 페스트를 피해서 고향으로 내려와 어느 날 과수원 사과나무 아래에 기대어 졸다가 자신의 머리위로 사과가 떨어져 깨어났다. 그때 사과가 왜 아래로 떨어지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고 마침내 그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으로 인류는 중력장속에서 살고 있음을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다. 누구나 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의심을 품은 뉴턴이야 말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창의적이고 위대한 인물이다. 넷째로 사과는 뉴턴에게서 독일인 루터로 건너간다. 루터의 기념 비석에 `그리고. 내일 세상이 멸망함을 알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 -마르틴 루터`, 이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바로 `스피노자`의 이름으로 말하여지는 문구다. 그런데 이미 백년 앞선 사람이 먼저 말했던 것, 앞으로 `내일 세상이 멸망할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그루를 심겠다`는 이 문구는 마르틴 루터의 것이라고 정정하자. 왠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이 말을 누가 했던 아무려면 어떤가. 좋은 말이다. 사과와 관련해서 좋은 말을 한 사람이 또 있다. `칼릴지브란`의 `예언자`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하여 예언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대가 한 알의 사과를 먹을 때에도 이렇게 마음속으로 기도하라. 그대의 씨앗은 내 몸에 살아있을 것이며, 그대의 내일의 싹들은 내 마음속에 피어나리라. 그리고 너의 향기는 나의 숨결이 되어 우리는 다 함께 온 계절을 기뻐하며 맞이하리라” 다섯 째 우리역사에 사과는 9세기 신라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구전가요인 `처용가`에서 `멋`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기록으로는 `계림유사`에 `임금`으로 적힌 것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임금`이 지금 `능금`의 어원이라고 한다. 능금은 `임금`과 같은 발음이기도 해서 나라에서 상서로운 과실이라 여겼다고 한다. 이 능금은 사과의 재래종으로 여러 품종개량을 통해 현재의 사과에 이르렀다. 능금은 사과와 같은 종이지만 또 다른데 사과를 가리키는 우리말이니 그냥 구별하지 않고 말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