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여름 암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66)의 시비가 세워졌다.
최근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성지(聖地)인 서울 용산구 신계동 당고개 성지에 세워진 이 수녀의 시비에는 그의 순교자들의 삶과 순교 정신을 기리는 묵상시 `당고개 성지에서`가 새겨져 있다.
당고개 순교성지를 관할하고 있는 서울 삼각지본당(주임 권철호 신부)은 최근 서울 용산구 신계동 성지 현지에서 시비 제막식을 거행하고, 순교신심을 더욱 힘차게 실천할 뜻을 다졌다.
이날 제막식에서 이해인 수녀는 “암투병을 하며, 일상에서의 순교정신이 더욱 필요하다는 묵상 안에서 이 시를 쓰게 됐다”며 “우리는 조그만 어려움도 못 참는데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 성인들을 생각하며 그분들의 정신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고개 성지는 서소문 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성인(聖人)을 탄생시킨 한국 천주교회의 성지다.
1839년 기해박해 당시 10명의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순교했고 이 중 9명은 성인 반열에 올랐다.
두 번째 한국인 신부인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인 이성례 마리아도 이곳에서 순교했다. 이성례 마리아는 남편이 먼저 순교한 뒤 어린 자식들 때문에 배교(背敎)했지만 회개하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끝내 참수됐다.
지난 9월 공원 형태의 가톨릭 성지로 재개발 축성식을 가진 당고개 순교성지는 기존 가톨릭 성당이나 성지와 비교할 때 파격적인 모습이다. 성모자상은 한국적인 어머니의 품을 형상화했고 뒤편에는 고즈넉한 한옥이 들어서 있다. 벽은 옹기와 도자기 조각을 이용해 황토 빛의 토속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아름답고 우아하기보다는 따뜻하고 넉넉한 한국적인 성모상을 형상화한 모습이다. 우리가 모두 알고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따사로운 품내음이 느껴지는 곳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