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은퇴의 의미 되짚기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0-28 23:07 게재일 2011-10-28 22면
스크랩버튼
이원락포항장성요양병원장
잔에 물이 절반 차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다. 어떤 이는 물이 반이나 찼네 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물이 반밖에 없네 라고 할 것이다. 노년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도 이와 같다. 어떤 이는 노년기를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이며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또 어떤 이는 노년기도 인생의 기쁨과 만족을 누려야 할 순간으로 생각한다.

19세기 독일의 제상, 비스마르크는 `65세에 은퇴하는 것`을 법제화 했고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는 이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비스마르크 시대의 평균 수명으로 보면, 일생 동안 직장생활이 가능했으나 오늘날은 의학의 발전으로 수명이 연장돼 장수가 가능하므로 은퇴의 시기와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에는 은퇴 이후에도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생활이 가능하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긴 삶을 앞두고 있다. 즉 은퇴는 사회에서의 분리나 소외가 아니라 인생 여정의 일부이며 새로운 미래를 여는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다. 노인은 절반이 비어버린 잔이 아니고, 절반이나 찬 잔을 말한다. 지금도 잔의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잔의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준비가 없다면 차가운 한 겨울 밤에 길 잃은 나그네 같을 수도 있고, 뜨거운 사막에서 물을 찾아 헤매는 자가 될 수도 있다.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은퇴 이후의 삶은 매일이 공휴일이나 일요일이 될 것이고 공허할 것이다. 가고는 싶으나 불러 주는 곳이 없다.

그러나 인생에서 은퇴기간을 잘 이용하면 은퇴 이후의 삶은 자유를 누리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준비를 잘하면 그 노인은 그의 생애에서 황금기가 될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노령의 배우가 주로 단역을 맡지만, 실제 인생에서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삶에서 주체가 되고 자신의 역할이 있다. 앞서 은퇴가 사회로부터의 단절이나 소외가 아니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은퇴 이후의 삶도 여전히 사회와의 관계 속에 있으며 은퇴자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가족이나 이웃, 더 나아가 사회게 이바지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거동이 어려운 독거 노인을 돌보거나 아이들 등하굣길에 안전하게 건널목을 지날 수 있도록 신호 안내를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은 은퇴로 인해 무력해진 자아감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현시대에는 버팀목이 될 이웃사랑 등은 사라지고, 온갖 보험제도만이 우리를 위로해 주는 오늘날 다른 이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모두 잘 알 것이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는 일은 사회적 지위와는 무관하게 평등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영역이다.

은퇴자가 봉사 활동을 통해 삶의 만족과 자신감을 되찾을 뿐 아니라 훨씬 더 젊어질 수 있다.

얼마 전 EBS 지식채널 e에서 `7일간의 기적: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를 방영했다. 이 연구는 1979년 하버드대 심리학과 엘렌 렝어 교수가 정신이 신체에 얼마만큼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70대 후반에서 80대 초반 노인들을 한적한 시골 수도원에 머물게 한 다음, 노인들이 젊었을 때 들었던 음악과 텔레비전 프로그램만 시청하게 했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던 바깥 생활과는 달리 수도원안에서 요리와 청소 등을 분담하면서 6박7일간 공동체 생활을 했다. 그랬더니 일주일 후 노인들에게서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실험 전보다 청력과 기억력이 향상됐고 체중도 늘어났으며 지능이 좋아지고 걷는 자세도 좋아졌다. 엘렌 렝어 교수는, 실험 결과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우리를 가두는 것은 신체의 한계가 아니라 이 한계를 믿는 우리들의 사고방식이다”

은퇴란 인간의 삶에서 사랑의 불꽃을, 늙은 후기에 다시 한 번 점화하는 때이다. 이때 사랑은 젊었을 때 사랑과는 다르게 표현될 수 있겠지만 다시 한번 더 사랑을 점화하여 은퇴 이후의 삶의 방향을 재조정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인생에서 은퇴란 멈추거나 끝나는 게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종합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