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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관하여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0-27 23:28 게재일 2011-10-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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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나는 20대 때도 내 벗은 몸을 오래 본 적이 없다. 공중목욕탕에 가는 때 외에 도무지 내 몸을 쳐다보기 싫었던 것이다.

이제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고 보니 더욱 그렇다. 옷을 벗고 거울 앞에 서는 일이 남자이기 때문인지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육체에 시선을 준다는 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왜일까?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별로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젊었을 때는 그래도 젊은 만큼의 순수성이 누구에게나 없다고 할 수 없다. 나이가 들면 문제가 달라진다. 윤기 있고 탄력 있는 피부도, 자기 삶과 세계를 바꿔 보겠다는 이상도 세월과 더불어 점차 퇴색해 간다.

그러므로 이 시간의 압력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 이게 관건이다. 그렇게 해서 상당한 정도까지 자신을 지켜 낸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사람도 스스로에게 물어 나는 결백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저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 하듯이 결점 많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점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안치환의 노래 가사,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이런 비교 표현은 비교 대상이 적절해야 효과가 나는 법인데, 내가 보기에 사람은 어느 때도 꽃보다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느껴질 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교법은 어느 때나, 무엇을 향해서도 구사될 수 있는 수사법이다. 그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려면, 꽃의 식물성을 사람의 동물성이 이겨낼 수 있으려면 그 얼마나 지독한 인내, 견인이 필요한 것이랴.

서울에서는 지금 투표가 한창이다. 지금 시간 12시55분. 조금 있으면 인터넷에 다시 시간 간격으로 올라오는 투표율 집계 현황이 뜰 것이다. 일곱 시에 2.1%이던 것이, 열 시에는 15.5%가 되었는데, 열두 시에는 22.4%로 조금 누그러졌다고 한다.

나경원 의원과 박원순 변호사 가운데 어느 분이 시장이 될까? 지금으로선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아마 이 글이 발표되는 내일에는 이미 당선자가 알려진 상태일 것이다.

이번 선거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흥미 있게 생각한 것은 선거가 `아름다움`을 둘러싼 논란과 논박, 상대방 상처내기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여당 쪽에서는 박원순 변호사의 `아름다운 재단` 등을 비롯하여 이 분이 쌓아온 `희망의 아름다움`이라는 이미지에 흡집을 내려고 했다. 그런 시도들에 따르면 이 분은 대기업들에 압박을 가해 협찬을 얻어냈고, 그 돈으로 해외에도 자주 다니고, 세금 같은 것도 정확히 계산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정말 그런가는 다음 문제고, 일단 의혹부터 제기하고 본다.

야당 쪽에서는 이에 맞서 나경원 의원의 `아름다운 피부` 이면에 온갖 문제들이 은폐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이 분은 초호화 피부 미용을 받고도 돈을 다 내지 않았고, 정치자금으로 미용을 받기도 했으며, 지역구 사무실 임대비용 같은 것도 스스로 부담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아름다우면서도 똑똑하다는 평을 얻은 이 분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이 가해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왜 이런 일들이 빚어진 것일까? 선거는 정치적 과정인데, 이것이 `아름다움`, 즉 `미(美)`를 둘러싸고 첨예한 싸움을 벌인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러나 이것은 두 후보 진영이 자신의 이미지를 `아름다움`이라는 명사를 중심으로 쌓아올렸기 때문에 빚어진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다.

이것은 일종의 부메랑 효과일 텐데, 이 부메랑이 아픈 것은 별도의 문제고, 이번 선거는 이렇게 `아름다움`을 전유해 온 방식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고 할 수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승자가 모든 것을 갖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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