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치권의 모습은 아직도 그 때와 달라지지 못한 느낌을 받을까. 한미FTA를 다루는 일부 정파의 시각이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이지 못한데 근본원인이 있는 것같다. 한미FTA는 무역을 다루는 영역에서 양국간 무관세를 전제로 한 자유무역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것이다. 그러나 무역 분야도 내용에 따라서는 국민주권에 관련되는 것들도 있고 양국간의 자유무역이 양국의 동맹을 더 공고히 하는 부수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주권문제에 관련되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외교적 동맹효과를 가져오는 데는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선 찬반이 엇갈릴 수도 있는 것이다. 주권적 문제와 외교적 손익을 제외한다면 FTA체결문제는 순수한 경제적 국익과 관련된 문제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 협상을 시작한 후 협정을 체결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당시 여권의 주류는 이를 지지했고 그 지지세를 업고 협정에 서명했던 것이다. 당시 여권 세력들은 한미FTA에는 주권 침해 요소가 없었다고 봤고, 한미동맹은 이를 계기로 더 발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의 여권에서도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정권은 이를 정리하면서 협정에 조인했고 국회비준만 남겨뒀다. 논리적으로 따져본다면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이 협정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여야간에 주권문제나 한미동맹과 관련된 문제는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국회 비준에서 중요 검토사항은 경제적 손익계산과 이에 대한 보완책 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진행의 흐름이 뒤집히기 시작한 것은 정권교체가 계기였다. 구여권의 핵심 세력들이 자신들이 여당시절에 추진해 온 입장을 바꾸어 반미세력들과 합세하면서 실사구시적 손익계산 절차를 팽개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현 여권이 비준을 위한 조급증이 빚은 잘못도 있었지만 국회상임위 상정조차 원천 봉쇄한 야당의 태도는 노정권의 협정체결 자체를 원천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정권이 바뀌면서 한미FTA를 반대하던 세력들이 차분하게 재협상을 통해 국회비준까지 마쳤는데 우리 국회는 이전의 찬성세력이 태도를 바꾸는 바람에 국익과 관련한 손익계산은 실종되고 만 것이다. 이 바람에 국민들은 이 협정이 한미 양국 사이에 전체적으로는 어느 쪽이 유리하고, 분야별로는 어느쪽이 유리한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속에서 비준에 쫓기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더욱이 야당측에서 손해를 본다고 주장하는 업계에서조차 비준을 빨리 해달라고 촉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민들은 야당측 태도에 대해 황당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국민들은 정말 실망스럽고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이런 판에 노정권 시절 대표적 한미FTA 찬성론자인 정동영 민주당 의원이 한미FTA 비준을 을사늑약에 비유하고, 통상교섭을 해왔던 김종훈 본부장을 “옷만 입은 이완용인지 모르겠다”는 모욕적 언사를 퍼부어 김본부장보다 오히려 국민이 우롱당한 심정이다. 노정권 시절 여당대표였고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였던 그가 그 때는 잘못 판단했다며 이렇게 뒤집어 씌우는 모습은 정말 어처구니 없다. 정의원은 지난 정권의 양지에서 진정으로 `옷 입은 이완용`과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면 국민에게 석고대죄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해야 옳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