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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맛 깊은 만남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0-24 23:08 게재일 2011-10-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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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안포항중앙교회 부목사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가을의 깊은 맛이 느껴진다. 하늘은 더욱 푸르고, 산야는 오색단풍으로 물든다. 가을은 말 그대로 황금들녘이다. 포항에서 천북을 지나 경주를 한 바퀴 돌아보는데, 가을 내음이 물씬 풍긴다. 길 양옆으로 늘어진 코스모스는 바람에 춤을 추며 반가운 손짓을 한다. 경주 성동시장에서 가을 나물들로 비빔밥을 비벼 먹고, 보문단지에서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잎을 만지작거린다. 손끝에서 가을이 묻어난다. 가을도 깊이가 다르다.

맛에도 깊이가 있다. 그래서 깊은 맛이란 표현을 쓴다. 사실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먹어보면 `깊은 맛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찾게 되는 맛, 깊은 맛이다. 곰탕을 끓여도 좋은 재료를 가지고 오랫동안 잘 우려내면 깊은 맛이 난다. 얼마 전 모임에서 먹은 곰탕은 정말 진국, 깊은 맛이 났다. 이유는 주방장이 직접 도축장에 가서 좋은 재료를 골라 24시간 푹 꽈서 나왔기 때문이란다.

만남에도 깊은 만남, 얕은 만남이 있다. 오늘날은 만남의 범위가 많이 넓어졌다. SNS(Social Network Service), 즉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마이피플 등의 발달로 만남의 그물망이 얼마나 확장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남이 넓어졌다고 깊이도 깊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17일 KBS 뉴스에서는 “SNS 강국 한국, 인간적 대면 소통은 최하위”라는 보도가 나왔다. 곤란할 때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구나 친척이 있느냐는 질문에 40개국 중에서 37위를 기록했다. SNS를 통한 만남은 깊은 속내를 드러내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기 때문에 정과 진지함이 사라지고 있다. 결국 우리 사회는 감정이 메마르고, 아주 이기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화의 종류도 깊은 대화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부부간의 대화, 자녀와의 대화, 부모와의 대화를 점검해 보면 깊은 대화가 얼마나 있는가? 경상도 남자는 퇴근하고 세 마디만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아는?, 묵자, 자자” 깊은 대화는 자신의 판단과 의견, 감정과 기분까지도 서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대화에 익숙하질 못하다. 바로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래”라고 반발한다. 깊은 대화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대화의 기술이 `-구나 화법`이다.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래서 화났구나” 부부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구나 화법`으로 깊은 대화를 해 보면 좋다. 많은 경우 깊은 대화에 목말라 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이 그렇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기도인데 얼마나 깊은 기도를 하고 있는가? 피상적인 얕은 기도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깊은 기도는 시간을 길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깊은 기도는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깊은 기도는 골방, 기도원, 깊은 곳에 가야하는 것도 아니다. 깊은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내 말이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이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형 에서와의 만남을 앞두고 깊은 기도를 드렸다. 한나는 마치 술 취한 여인처럼 하나님 앞에서 깊은 기도를 드렸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면서 일천번제로 하나님께 깊은 기도를 드렸다.

특별히 다니엘은 자신의 기도생활을 빌미삼아 자기를 사자굴에 넣으려는 간신들의 속셈을 알고도,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깊은 기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에게 주어진 높은 은혜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 삶의 약점 중 하나는 모든 것이 얕다는 것이다. 깊이가 부족하다. 생각의 깊이가 얕고, 말의 깊이가 얕다. 그래서 쉽게 상처주고, 쉽게 오해한다. 너와 나의 관계의 깊이도 그리 깊지 못하다. 특별히 영적인 깊이는 갈수록 얕아지고 고갈된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깊은 맛, 깊은 만남을 기대하며 오늘도 깊은 생각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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