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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정의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0-21 23:00 게재일 2011-10-2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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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포항장성요양병원장
3일 굶어서 도적질 안할 사람이 없다고 했다. 만일 당신이 그 기간 동안 먹지 못했다면, 그때 주린 배를 채우려고 훔쳐 먹는 것은 정당한가? 인도가 영국의 식민 시절에 영국 귀족이 하인들을 데리고, 인도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지금은 보호종인 호랑이를 잡아서 앞에 두고,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가 보호종을 죽인 것은, 잘 한 일이냐?

과거에 작은 마을 단위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그 마을의 힘이 센 사람, 또는 제일 연로한 노인이 평가를 내려 중재하였다. 그들의 생각이 곧 판결로 나타났다.

어느 사회에서나 삶의 기준이 되는 법이 있다. 법은 정의의 편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통념의 복판에 그 기준을 둔다. 민주화라든가 용공 사상으로 처벌받은 자의 많은 수가, 재심청구로 무죄가 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아왔다. 성인인 예수는 사회 혼란 죄에 해당되었다. 사법부의 판결은 그 시대 상식의 복판에 있고, 그것은 `저울`로 사법부를 표현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법의 힘은 그것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범위가 넓을수록 객관성을 더욱 띄어야 한다. 한 마을에서 지구적 차원까지 커질수록 보편성은 더욱 커져야 한다. 또 사회가 혼탁할수록 법의 운용은 더 엄격해지고, 강력해 진다. 특이한 곳은 북한이다. 그곳에는 김정일과 공산당의 교시가 판결의 기준이 된다. 법과 정의는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법은 사회생활의 기준이고, 정의는 인간의 삶에서 절대적 진리로 안내하는 가이드역할을 다. 법은 정의의 한부분일 뿐이다.

정의가 빛을 발하려면, 죄악이 있어야 한다. 영화에서 정의의 주인공 사나이에게 덤비는 악역은 질이 나쁘고 악랄할수록, 주인공의 활약은 더욱 돋보인다. 정의는 더욱 밝게 드러난다. 이때는 관객이 감격하면서 흐느껴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사회에서는 서로가 사귀어 정의(情誼)가 넘치면, 사회에서 바르고 옳은 길을 밝히는 기준인 정의(正義)가 거의 힘을 못 쓰게 된다. 너와 내가 서로 이해하여 수용해 버리면, 따스한 햇볕에 눈이 녹듯이 정의는 소멸되어도 지장이 없다. 사랑은 인간최고의 정의마저 녹여버리는 무한히 큰 용광로이다.

정의와 사랑은 그 뿌리가 같다. 사랑 없는 정의, 정의 아닌 사랑, 모두가 가면이고 사이비이다. 정의와 사랑에는 차이가 있다. 정의에는 사랑의 마음이 있지만, 칼과 같이 예리하게 평가한다. 반대로 사랑은 폭이 넓어서, 예리하지 않고, 뭉뚱그려 감싸 안는다. 희생과 봉사는 그 속의 일부일 뿐이다. 이렇게 보면 사랑과 정의는 전혀 다른 생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사회가 미래 지향의 목표점으로 가는 데는 공동으로 협력하고, 그 둘은 한 몸이 된다.

우리나라의 옛 이야기에는 정의나 강력한 사랑의 표현, 그리고 철저한 복수심 같은 것이 없다. 심청의 이야기, 흥부 놀부의 이야기, 장화홍련전 등에서는 악역의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다. 서양의 몽테 크리스트 백작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골이 송연한데, 아버지를 위해 자기 스스로 바다에 뛰어든다든지, 재비다리에 상처를 내는 정도의 악역만 있을 뿐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순하고도 어질다는 말이다. 짐승을 죽여서 잡아먹는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이웃과 인정을 나누는 순박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민족사에서 칼날과 같은 정의에 대한 논의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가 세계화됨에 따라, 우리도 정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서양은 칼로서 흥하고 망하는 철두철미 자기주장이 강한, 정의를 따지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정의에 대한 논란는 기독교 문화가 창연했던 서구에서 주로 따져 왔으나, 그 후 이제는 서양의 문화가 동양은 물론, 지구를 휩쓸고 있다. 가치관과 정의에 대한 기준도 인문적인 동양의 것에서, 수학적으로 치밀한 서구의 잣대가 세상을 뒤덮으려 하고 있다. 시공은 매우 좁아졌다.

정의에도 이제는 국가적인 수준을 넘어 세계적인 사고로 접근해야 한다. 이때는 인간사이의 기준보다도 종교의 절대적인 정의기준을 필요로 하는데, 불행히도 각 종교는 교리의 확장을 위해 거의 전쟁을 하는 듯하다. 서로 대화가 거의 없다. 이 시대의 지성인은 현실에 맞아드는 정의에 대한 개념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저울의 균형점과 정의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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