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간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한 초간 권문해(草澗, 權文海 1534~1591)가 1582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12년에 재건하고, 병자호란 때 소실되어 다시 세운 것을 그 후 1870년에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간정으로 가는 길목에는 주변의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초간은 만석꾼 부자가 나는 자리와 당대의 학자가 날 자리를 놓고 비교하다가 선인농학형(仙人弄鶴形)이라는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전한다.
물이 단층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폭포라고 한다면, 초간정을 감사고 흐르는 작은 물길 속에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의 급한 흐름을 폭포라고 할 수 있을까? 높이는 1미터 남짓 되고, 물소리 또한 그리 높지도 않다. 오히려 부드러운 물소리라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또한 정자 아래는 수직 절벽 대신 큰 바위들이 어울려 정자를 받치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조선시대 정자건축이 그러하듯이 초간정 또한 시내가 휘감고 돌아 흐르는 경관 좋은 암반 위에 자리 잡은 팔작기와집으로 자연기단위에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면의 좌측 2칸에는 온돌방을 배치하고 시내물이 돌아 흐르는 쪽의 4칸은 통칸으로 우물마루를 깔고 계자난간을 돌려 풍치를 한층 돋우고 있다. 북쪽 처마 밑에 `草澗精舍(초간정사)`란 현판이 걸려 있다.
필자는 초간정 정자마루 양쪽에 설치된 판자벽이 실내환경조절적인 측면에서 큰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정자의 동쪽은 물이 휘돌아나가는 곳으로, 반달형상의 소와 그 건너편을 막고 서 있는 병풍바위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밋밋하게 흘러내리던 시냇물이 몇 층의 커다란 바위 사이로 소리치며 흘러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만약 그곳에 판자벽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면, 소리치며 휘돌아 나가는 물길이 만들어낸 소와 절벽바위에 온종일 시선이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그것은 여가를 즐기기엔 좋을지는 몰라도 학자가 공부하기엔 부적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책 읽는 이에게는 판자벽의 차단이 나름의 숨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판자벽 하나로 공부와 휴식 사이를 넘나들게 했던 조상들의 숨은 지혜와 슬기가 돋보인다. 문득 `한국의 정자건축` 특집 다큐멘터리 촬영 때 환희 비추는 보름달아래 초간정 마루에 서서 대금을 길게 불던 기억이 새롭다.
/영남이공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