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인(文人)이 소설을 인생의 축소판이라 했다. 문학 형식의 하나인 소설은 현실적 인생을 작가의 상상에 의해서 구성적으로 서술한 창조적 이야기이다. 소설을 두고 실상이냐, 허상이냐를 따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설이 인간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성립된다면 그것은 사회의 거울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인생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이 인생의 가장 멋진 것은 친교에 있고 가장 위대한 성공은 자신(自信)에 있다는 비밀을 깨우쳐 준다면 그것은 성서만큼 유용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소설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인생을 체험하려는 시도 그것이다. 즉 화가의 캔버스에서 우리가 보게되는 것과 동일한 시도를 소설이 포기 한다면 소설은 매우 이상야릇한 난관에 이르러 버릴 것이라는 것이다. 필자도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많은 친지들로부터 같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이 사람아, 내 인생 살아온 과정 소설로 쓴다면 몇 권은 될 것일세. 시간나면 내 얘기 듣고 소설로 좀 써 줍세 한다. 여기서 인생이 소설이고 소설이 인생임을 감지한다. `소설은 거울이다`라고 말한 스탕달의 주장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거울에 비쳐진 이미지를 보는 것이 아니고 거울 속에 뛰어들어가는 것이라고 사르트르는 말한다. 이 표현은 기발하지만 사실이라는 것이다. `작품이 시원치 않으면 눈 앞에 검은 활자가 떠오를 뿐이다`라는 주장도 사르트르가 표현한 것이다. 사람 사는 생에에도 마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전반·중반·후반이 있겠지만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인생을 3막5장으로 간주했다. 소설의 독특한 작업은 속물근성이 야기시키는 환상을 기록하며 소설이 가상했던 것처럼 모든 허위적인 겉치레 속에 숨어있는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실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중에서 실상이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경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