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마 전 중국에 가서 그곳 한국어 전공 학생들 앞에서 한국문학의 현황에 대해서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우리나라 문학의 중요한 특질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여성 작가들이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세계시민적인 사유를 가진 작가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성 작가들의 활약상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어찌 되었든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와 공지영 씨의`도가니`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강의 장소가 외국이니만큼 우리나라 작가의 문학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것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필자가 선택한 설명 방법은, 신경숙 씨는 사람들의 마음 세계를 그리고, 공지영 씨는 세상일을 그리는 작가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고민은 비평가로서 과연 이 두 작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특히 공지영 씨 소설이 대중소설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데 반해 신경숙 씨 소설은 늘 문학성이 높다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기 때문에, 작품의 가치 여하를 둘러싼 생각이 저절로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에 한 `무명` 작가를 만났다. 이 작가는 이제 60세를 바라보는 연세에 다른 직업은 일체 갖지 않았고 오로지 소설에만 매달려 왔노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이 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신경숙 씨 작품 얘기가 나왔다.
`엄마를 부탁해`를 가리켜 대뜸 자기 미화적인 소설이라고 했다. 물론 이 소설 속 주인공이 작가 자신은 아니지만 여러 모습에서 작가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주인공에게서 작가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이런 걸 `암시된 저자` 기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애매모호한 신변소설적 기법을 빌려 작가는 자신의 삶과 자기 가족의 삶을 너무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필자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오빠가 어렸을 적에 검사를 꿈꿨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해 엄마에게 죄송해 한다는 대목을 보고는 어딘지 떨떠름했었다. 검사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높은 사회적 비중을 가진 직업이고, 따라서 작중인물의 생각이든 화자의 생각이든 이 직업을 지망하는 데 대한 성찰이 조금이라도 묘사, 진술되기를 바랐지만 작품은 끝내 아름답고 슬픈 가족 이야기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검사가 되고 싶었지만 못돼서 엄마에게 미안한 오빠`.
이것은 하나의 작가적 전략이고, 또 신경숙 씨가 이런 사회적 문제를 얼마만큼이나 전면에서 다룰 수 있는 작가냐 하면 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작가 쪽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면, 차라리 이야기를 가족사의 테두리 안에 가둬 두는 것이 나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이렇게 해서 `엄마를 부탁해`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엄마`에 대한 감상적 기분과 죄의식을 자극함으로써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데 지나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래 생각해 보니, 하기는 `엄마`에 대해 이 정도로 잘근잘근 곱씹은 소설도 없었다고 보면 이 작품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사연은 이런 저런 많은 수필과 시들에 나오는 `엄마` 이야기를 집대성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일종의 종합판 `엄마` 이야기라는 것인데, 이런 소설이 과연 우리 소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인지, 또 이런 가족에의 익애(溺愛)가 과연 창조적인 주제인지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