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수많은 중간고사를 지나 교사가 되고나서 바라본 중간고사는 또 다른 세계였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성적의 차이를 낼까 고민하게 되고 평균과 표준편차에 신경 쓰게 되는 출제자가 된 것이다. 중간고사 몇 주 전 부터 벌써 중간고사의 무게를 느낀다. 혹시 시험문제가 유출될까 노심초사하고 어떤 문제를 낼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 이 기간이다. 여기엔 긴장이라기보다 무언가 힘들게 높은 고개를 넘어가야하는 노동이며 새로운 고비 같은 것이다. 거기에다 출제한 문제가 틀리기라도하면 좌불안석이 된다. 그것을 겨우 수습하고 나면 채점과 확인 검토과정이 남아 있다. 그래도 십년쯤 그걸 하다보면 이골이라도 날법하지만 수업의 부담이 사라진 자리에 살짝 불안한 쉼이 있을 뿐이다. 학생들의 커닝을 방지하기위해 눈을 두리번거릴 때도 있고, 살짝 비켜선 문제를 두고 학생들과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기도하고 주관식 채점을 하다가 초등생 같은 웃기는 답변을 보고 씨름을 잊기도 한다.
그러니 중간고사는 학생들만 치르는 것이 아니다. 교사도 같이 치르고 있을 뿐 아니라 가정에서 학부모 또한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을 터이다. 어쩌면 과장인진 몰라도 온 나라가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은 학생 발에 채인 강아지도 `엄마가 보고 있다`는 구호에서도 알 수 있듯 그 영향이 남편들에게도 미쳐 귀가가 빨라지기도 한다. 중간고사 기간은 어쩌면 폭풍전야인지도 모른다. 가족들이 모두 이 수험생을 위해 조심조심 인사도 `시험 잘 쳐라`정도는 부담이 갈 것 같아서 `잘 다녀 와`에 좀 더 힘을 준다. `우리 얘는 시험기간인데도 공부를 안 해요`라며 속상해하는 학부모라도 좋은 성적표에는 함박웃음이다. 시험이야 어떻게든 잘 끝나겠지만 `성적표` 이것이 항상 문제다. 좋은 점수든 나쁜 점수든 그건 어떤 수치에 불과한데 왜 우리는 거기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은 한 번도 해보지 않고 부모와 자식 간의 의가 상하고야 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중간고사 성적이니 기말고사에는 좀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이 나오도록 해”정도면 “휴”하고 지나갈지 모르지만 내가 아는 어느 집에서는 밤새도록 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브라이언 트레이시라는 유명한 사업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릴 때 자신의 학교에서 일등 하던 친구는 고향에서 작은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고 늘 꼴찌였던 자신은 매출이 몇 천배 넘는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큰 사업체를 경영하고 있다고, 만약 그때 공부에 대한 방법을 알고 그것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면 역시 공부를 잘했을 것이지만 그보다 지금처럼 사업에 대한 성공 방법과 그것에 대한 열정을 키운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중간고사에 실패한 학생과 가정에 이 마지막 말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공부 이외에도 우리가 선택할 것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