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 국어 교과서 만드는 일이 밀려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 더 미루지 말고 책 한 권은 꼭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작년 말의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와 이번 9월에 나온 책 `일제 말기 한국문학의 담론과 텍스트`.
학생들 볼 낯이 겨우 생겼다고 기뻐하면서 돌아온 필자가 이번 학기에 가장 역점을 두고 싶었던 것은 학부생 강의 잘 만들어 보기. 필자가 맡은 학부생 강의로는 `문학과 대중문화`, 한 80명쯤 수강하는 이 강의에 열을 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식 강의실에서 마이크를 들고 강의를 하게 되었다. 기왕이면 프리젠테이션을 이용해서 강의를 해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중국 출장이다, 추석이다 해서 빠지게 되는 수업은 동영상 강의를 촬영해서라도 메꿔 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이번 주에 강의하겠다고 학생들에게 공언해 놓은 것이 박계주의`순애보`. 대개 국문과에서의 소설 공부는 이른바 본격 소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일단 대중소설이라는 낙인이 한 번 찍힌 작품은 깊게 보기 어렵다. 나 대중문학 공부하는 사람이오, 라고 대놓고 나서지 않는 한, 박계주의 `순애보`나 김말봉의 `찔레꽃`이나 정비석의 `자유부인`같은 작품을 두루 섭렵하기 어렵다.
그런데 학생들 가르칠 욕심에 이 `순애보`를 도서관에서 빌려 중국 출장에 가져가 읽다가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다. 도저히 일제시대 때 발표한 소설 이야기로 믿을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박계주가 이 소설을 해방 후에 다시 바꿔 썼다는 것인데, 왜 그랬을까? 혹시 이 작품에 `친일`, 그러니까 대일협력 색채가 강해서 그걸 바꿔보려고 한 것일까?
궁금증 탓에 일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애초의 판본을 읽어내고 나니, 이게 웬걸, 해방 후에 개작한 작품보다 해방 전에 연재한 작품이 오히려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던가.
작가 박계주는 원래 제도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순애보`에 나타난 그의 기독교 사상은 그만의 사상적 독특함을 발산하고 있었으니, 그 가장 중요한 내용은 사랑은 죽음만큼이나 강하다는 `아가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자기만을 생각하는 `동물아`(動物我)에서 벗어나, 열심히 일하고, 남을 위하고, 사람을 믿고 사랑하고, 서로 돕는 `인격아`를 양성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박계주는 그러한 자신의 사상을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남자 주인공 문선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을 경찰에 고발하지 않도록 하고, 여자 주인공 명희에게는 두 눈을 잃어버린 문선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고 끝내 그를 사랑하는 길을 가도록 했다.
이 `순애보` 원판을 읽으면서, 필자는 이 작품이 단순한 `대중소설`이 아니라 상당한 품격을 갖춘 작품이라는 것, 물론 엽기적인 장면, 자극적인 묘사도 있기는 하지만 그만큼이나 사람의 영혼을 위로 끌어올리는 작품임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근대문학의 풍경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먼저 보기 전에 딱지부터 붙이거나 그 딱지에 의해 영향 받는 인습을 버려야 한다는 것. 이제부터 필자는 또 다른 문학 공부를 시작해야 할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