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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와 묘수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10-05 23:21 게재일 2011-10-0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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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욱시인
시인이나 작가에게 신문은 소재의 보고(寶庫)다. 1719년에 발표된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도 신문 기사를 보고 영감을 얻어 쓴 소설이다. 2005년 5월27일 중앙일보에 실린 `보이저 1호, 태양계 끝자락까지 갔다`라는 기사 덕분에 필자도 `보이저 氏`라는 졸시를 얻었다. 얼마 전에는 `우리 생애에 사라질 아홉 가지 사물들`이라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미래학자 찰스 포프가 예측한 것을 중앙일보에서 소개했는데 우체국, 수표, 종이책, 음반, 텔레비전, 컴퓨터 관련 장치, 개인정보, 유선전화 그리고 종이신문이 그 슬픈 주인공이다. 이런 기사는 재빨리 시인의 수첩에 기록되거나 작가의 스크랩함으로 저장되기 마련이다.

게 중에는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도 있다. 종이책과 종이신문이 그렇다. 설마 아예 없어지기야 하겠어? 라는 의구심이 든다. 스마트폰, 태블릿 PC의 이용이 늘면서 전자책이나 온라인뉴스가 대세긴 하지만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의견에는 회의적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쓴 서울대 김난도 교수도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비린 듯 산뜻한 잉크 냄새로 아침을 맞으라고 당부한다. “신문은 그대가 원하는 정보를 넘어, 알아야 할 정보를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매체”라고 역설하는데 이는 온라인뉴스가 가진 취약점을 에둘러 말해준다. 실시간 검색 순위와 포털 메인 페이지의 선정성, 편협성은 이미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아날로그든 디지털이든 독자의 현명한 중용이 필요한데 문제는 권력과 자본의 나팔수가 된 신문들이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신문들은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니 널리 읽혀야 한단다. 어쩌면 우리 생애에 사라질 아홉 가지 중에 첫 번째는 바로 권언유착의 신문과 언론이 아닐까 싶다.

이런 와중에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가 스마트폰 천만 명 시대와 맞물려 감지되고 있다. 국민 4명 중 1명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시대. 도구의 변화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요즘 온라인에서 회자되고 있는 낱말은 `꼼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 라는 애플 앱스토어 팟캐스트 라디오 방송이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민주당 전 의원, 주진우 `시사 IN` 기자,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참여하는 일종의 정치 대담 프로그램이다. 지난 4월 28일 첫 회 방송을 시작한 이래 우리 사회의 민감한 정치적 사회적 사안을 거침없이 가지고 논다. 질서도 형식도 없다. 심지어 욕도 튀어나온다. 그런데다 걱정스러울 만큼 편파적이다. 그들은 청취자를 계몽, 선도한다는 개념이 없다. 오로지 엄정한 `사실`만을 제공한다. 최근 18회(2011년 9월 7일 기준)까지 방송됐는데 그 인기와 반향이 자못 위력적이다.

`나꼼수`의 인기는 언론장악이라는 권력의 꼼수에 풍자와 조롱이라는 꼼수로 맞대응하면서 국민의 묵은 체증을 시원하게 내려 앉히는 후련함에 있다. 실제로 일반 국민은 정치나 사회의 중요한 사안에 접근할 수 없다.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은 대부분 조작되거나 연출되거나 세탁된 것이다. `실체`와 `속살`에 대해 거침없이 까발리는 그들의 대담은 늦은 밤, 수많은 `나꼼수`의 열혈 청취자들을 잠 못 이루게 한다.

권력과 자본의 꼼수는 늘 속임과 거짓말을 동원한다. 하지만 `나꼼수`의 꼼수는 반대로 진실과 입바른 말로 거대한 꼼수에게 똥침을 놓는다. 애석하게도 꼼수가 난무하는 시절이다. 꼼수를 몰아낼 방법을 없을까? 있다, 묘수가 있다.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유하 시인에게 빌려 덧붙이고 싶은 묘수는 바로 이것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모오든 꼼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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