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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成都)에서 생각하는 한국문학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9-29 23:28 게재일 2011-09-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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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중국말로 청두라고 하는 이곳은 옛날 삼국지에 나오는 촉나라의 서울 땅. 지금은 쓰촨성, 그러니까 사천성의 서울로, 중국 대륙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고 물자도 풍부, 기후로 온화해서 사람들의 성품도 여유만만한 곳이다.

어제 저녁에 만난 이 대학 부총장은 아주 젊어 보였다. 나이를 물어보니 실제로 젊어 한국 나이로 쳐서 46세. 필자와 함께 동행한 한국문학번역원의 김윤진 본부장께서 아주 젊은 나이에 부총장으로 일하신다고 하자, 이곳에선 50대 후반이 되면 벌써 은퇴할 지경이라고 했다. 중국은 오래된 나라인데, 부총장을 만나니 오히려 이 나라가 젊어 보였다.

그런데 이 양반과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실력이 만만찮아 보였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에는 비행기 신소재 연구하다가 피혁 쪽으로 방향을 돌려 공부하고 돌아왔다 한다. 우리가 온 곳이 온 곳이다 보니, `삼국지` 얘기가 화제에 오르자 자신은 이 책을 열 번은 읽었을 것이라고 했다. `삼국지`는 정치적, 정책적 경륜을 쌓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탐독하는 책이니 그렇다 쳐도, 이번에는 이곳에서 두보가 4년쯤 머물렀던 일을 상기시키자, 자신은 다섯 살 때부터 두보의 시들을 배웠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람은 한국현대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구체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어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도 하는 것이었다. 문화대혁명이 휩쓸고 간 이 대륙에서도 이런 전통적인 교양을 가진 이과학도가 있는 것이다.

이 사람이 이제 우리에게 한국문학에 대해 물었다. 내 차례가 되자 당신이 여기 와서 강연할 내용은 뭐냐는 것이었다. 나는 몇 년 전 독일 푸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갔던 일을 떠올렸다. 내가 한국 여성소설의 특징을 설명하자 독일인 교수 왈, 그런데 그 문학이 중국이나 일본 거랑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질문은 매우 `건방진` 것이었지만, 이 작은, 그때만 해도 더 알려져 있지 않던 나라의 문학에 대해 어떻게든 뭔가 설명해 보려던 필자로서는 당황하고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에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 민속학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중국, 일본, 한국 세 나라의 문화적 특징을 아주 명료하게 나눴습니다. 중국은 형(形)의 문화, 일본은 색(色)의 문화, 한국은 선(線)의 문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작은 나라의 문화를 중국이나 일본같이 큰 나라의 문화들과 동등하게, 삼분해서, 그 정체성을 설명하려 한 그의 시도를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제가 한국문학은 어떤 문학인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중국이나 일본 문학 읽는 것을 즐기는데, 중국의 위하의 `허삼관매혈기`같은 작품을 읽으면서 그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에 반했습니다. 한국에는 지금 이만큼 유머와 풍자를 겸비한 작가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몇 사람 유머를 구사하는 작가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또 중국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오싱 젠의 `나 혼자만의 성경`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문화대혁명을 비판해 나가는 그 철저한 고독에 반했습니다. 한국의 반독재 작가들이 과연 그만큼의 철저한 고독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런데 예전에 저는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장이모 감독이 만든 영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언제 저 정도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세계에서 다들 한국영화를 아주 우수하다고들 합니다. 언젠가는 한국문학도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한국문학의 현재 상황에 대해 제가 생각해 보려는 것을 얘기해 볼까 합니다.

부총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필자가 한 말에 대한 어떤 반응인지를 필자는 알 수 없었다.

필자가 이곳에 온 것은 이곳 서남민족대학의 초청으로 한국어과 교수들을 만나고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화요일 아침, 내일 그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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