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술 선진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제다이의 귀환`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미국 기업 애플이 아이폰을 앞세워 IT 강국이라는 한국의 소비자를 열혈 팬으로 만들어 버렸다. 얼마 전 사상 초유의 쓰나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기업들 역시 세계 제조업을 주도하는 핵심 부품 기술력 등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빠르게 회복해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이 공급하는 핵심 부품을 구하지 못해 가동을 중단하거나 원부재료 사재기에 나섰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 동안 모방의 귀재였던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선진 기업들의 제품을 업그레이드하여 저렴한 가격에 해외 시장에 선보여 왔다. 미국과 유럽의 소비자들은 동양에서 온 “신상”에 열광하며 지갑을 열었다. 세탁기, PDP/LCD TV와 같은 가전은 물론이고 휴대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우리 기업들은 세계 소비재 시장 영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기업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상업용 선박, 고급 철강재 등 기업용 제품 영역에까지 진입하여 명성을 떨쳐 왔다. 그러나 이제 기술력으로 무장한 경쟁 기업들의 공세 앞에 “여전히 우리 기업의 실력은 발빠른 복제품 만들기(Fast Follower)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경제지 일면을 차지하게 됐다.
한국 기업가들이 창조성에 목 마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삼성이 창조성을 기업 생존의 제 1원칙으로 내세운 것도, 포스코가 `유레카` 활동을 통해 구성원의 창의적인 업무 개선을 독려한 것도 모두 세계 최초 제품 타이틀을 가진 기업이 되고자 함에 있다.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새로운 제품을 글로벌 시장에 내지 않고서는 회사의 지속적인 존립이 어려울 것이라는 상황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자율 복장, 유연 근무 시간 제도, 여성 및 외국인 채용을 통한 인재 다양성 제고 활동 등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처럼 창의적인 업무 환경이 아이디어 창출에 자극제가 되고 성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편 우리 기업들의 창의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면, 경험 있는 경력자보다 새로운 생각을 가진 신입사원을 오히려 더 우대하는 것은 아닌지, 조직에 충성해 온 리더를 관행과 타성에 젖은 패배자로 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아이디어맨 만들기에 급급한 와중에 열정을 가진 경력자들과 현장에서 잔뼈 굵은 기술자들은 보상 없는 개선 아이디어 내기에 지쳐가고 있다.
필자에게는 파나소닉의 펠로우 연구원이 덧붙인 창의성에 대한 한마디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반짝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끈기 있는 연구로 최초의 제품들을 연구해 냈다” 피터 드러커에 비견되는 기업 조직 학자인 시카고대 칙센미하이 교수는 `몰입(Flow)`하는 구성원이야말로 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Shift)가 가능한 신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마치 신들린 듯 그림 그리기와 조각에 몰두하는 미술가들, 몰아의 경지에서 모든 정열을 쏟아내는 지휘자나 발톱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연습을 거듭하는 발레리나처럼 `몰입`만이 신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테스가 목욕탕에서 해결책을 찾아 벌거벗고 연구실로 향한 데는 아이디어보다 `몰입(Flow)`이 앞섰기 때문이다. 글로벌 선진기업들은 경험 많은 연구원들이 관리자(Manager)가 되지 않고도 연구원(Researcher)으로서 임원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도록 연구임원제도(Research Fellow)를 운영하고 있다. 애플이 소프트웨어에 강한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20년 이상 프로그램 개발에만 몰두한 전문가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 기업들도 아이디어맨이 아닌 `몰입`을 통해 `유레카`를 외칠 수 있는 창의적인 전문가를 키우는데 앞장서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