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행복이 반드시 남녀평등에서만 오는가. 그것이 어째서 희생이며, 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희생 좀 하면 안 되나? 물론 반대도 성립한다. 어느 TV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여학생 때 필이 꽂혀 매달리며 따라다니다가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 결국 남편은 젊은 나이에 병을 얻어 반신불수의 몸이 된다. 그 남편을 20년 동안 뒷바라지하는 여성을 봤다.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 희생이라고?
반대의 필름도 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제대로 운신할 수 없는 70대 할아버지. 그는 깁스를 한 체 자신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아내 간병에 나서고 있다. 젊어서 오만가지 고생을 다 안겨주었던 아내였다. 그래도 그를 몇 번이나 생사의 위기에서 구해냈고 오늘까지 지켜왔다. 그 아내가 덜컥 병이 들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 벌써 10년이 됐다. 그 아내는 남편이 아니면 밥, 아니 죽 한 모금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아내를 수발들면서 행복해한다. 세상에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는 아내요 남편이었다.
개인적으로 기러기 아빠처럼 불쌍히 여기는 사람도 없다. 제사가 무슨 소용이냐는 디지털 시대에, 자식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는 스마트 시대에, 아직도 자식에게 모든 것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만난다. 능력이 된다면 차라리 자기 인생을 즐길 일이다. 하긴 그것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할 말이 없다. 자식의 뒷바라지하는 일이 즐겁고 그것이 자신의 취미생활이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마루에서 고스톱 치는 남정네들을 위해 부엌에서 뜨거운 불길 덮어써가며 부침개를 붙이고 찌개를 끓이는 여성의 모습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세계적인 빈곤퇴치를 위한 세계적인 개발 경제학자인 제프리 삭스 콜럼비아대 교수는 현대인들이 경제적으로 더없이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불안과 불만이 가득차 있고 이는 결코 행복한 인생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최근 행복의 경제학이라는 칼럼을 통해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에서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추구하는 경제 정책을 추구할 것을 주장했다.
그를 포함한 각 방면의 세계적 전문가들이 최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손꼽히는 부탄의 수도 팀푸에서 모여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국민 소득보다는 행복 추구가 더욱 소중하며 이 점에 대해 모두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내린 결론은 경제적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뻔한 사실이었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신경제재단(NEF)이 지난 2009년 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기대수명, 삶의 만족도, 환경오염지표 등을 평가해 국가별 행복지수(HPI)를 산출했다. 결과 삶의 만족도에서 세계 최고였고 장수국가로 알려진 중남미의 코스타리카가 76.1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행복지수 44.5점으로 중위권인 68위에 그쳤다. 미국은 행복지수 30.7점으로 하위권인 114위를 차지했고 베트남이 5위, 중국이 20위에 들었다.
미국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성장해도 행복은 비례하지 않았다. 행복은 개인과 사회생활 양측에서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성장만큼 가족과 친구, 공동체, 연대, 내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등이 모두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행복은 각기 느끼기 나름이니까. 그러니까 남의 행복을 시샘은 하더라도 깔보지는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