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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동안 붉은 꽃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9-16 23:35 게재일 2011-09-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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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명시인
여름 끝에 여행을 떠나보면 길가에 핀 붉은 꽃이 눈에 들어온다. 색이 고와서 저런 꽃이 있었는가 싶어진다. 그러나 정작 알고 보면 늘 주변에서 보아왔던 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꽃을 바라다볼 여유도 없었겠지만 여행이 가져다준 호기심과 관찰력 때문에 그때서야 발견한 것이리라. 이 붉은 꽃을 조선 초기 서화가였던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비단 같은 꽃이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 사람의 혼을 빼앗는 듯 피어 있으니 품격이 최고이다`라고 했다. 역시 조선초기의 문신이며 사육신의 한사람인 성삼문은 `지난 저녁 꽃 한 송이 떨어지고,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어 서로 백일을 바라보니, 너와 더불어 한 잔 하리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바로 배롱나무를 두고 쓴 글이다.

배롱나무는 여름 내내 백일동안 붉은 꽃이 피고진다. 나무껍질은 매끄럽고 무엇인가 손에 들고 긁으면 가까운 가지부터 흔들리며 간지럼을 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간지럼나무라고도 하는데 추운 겨울을 잘 날수가 없어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주로 가로수나 정원수, 묏자리의 둘레에 심는다. 요즈음은 개량돼서 여러 색깔 꽃이 나왔으며 흰 꽃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배롱나무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다. 800년 된 노거수로 역시 묏자리의 둘레에 심어진 나무이다. 배롱나무는 자미화(紫微花)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것은 당나라 현종의 연인인 양귀비가 머물렀던 성이 자미성이었고 그 자미성에는 배롱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미화가 되었다고 한다. 양귀비의 고사를 생각나게 하는 당나라 시인 유우석의 자미화에 대한 노래가 있다.

`몇 년이나 노을 빛 위로/ 금화성을 드나들었던가/ 잠시 상록수를 제쳐두고/ 계양령 위에 핀 꽃을 바라본다/ 자주색 싹이 끈처럼 늘어지고/ 금빛 실이 창끝에 모여 있는 듯한데/ 작약이 핀 뒤에는 팥배나무만큼이나 사랑을 받는구나. 요사스런 복사꽃의 자태를 배우지 않은 것은/ 헛된 영화는 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네`

이 아름다운 꽃을 여름의 끝자락에 앉아 노을 함께 바라보니 정말 양귀비라는 이름을 떠올릴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걷이를 하는 농부들이 들판에 나가고 그늘을 찾아 양반들은 정자에 앉아 음풍농월을 즐기던 그런 때 그곳 가까이에 배롱나무는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으리라. 전남 담양의 명옥헌에 가면 자미꽃은 왜 사군자인 매난국죽에 들지 못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붉은 꽃은 왠지 선비의 정신과는 어울리지 않아서 그럴까? 그래도 우리 한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무가 배롱나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옥헌은 곳곳에 숨겨둔 배롱나무를 통해 오히려 방문하는 누구나 사랑하게 되고야 마는 그런 맛을 지니고 있다. 도종환 시인은 `배롱나무`라는 시를 통해 이 새롭게 발견한 사랑을 노래한다.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루하고 먼 길을 갈 때면 으레 거기 서 있었고/ 지치도록 걸어오고도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할 때/ 고갯마루에 꽃그늘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기도 하고//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길로 접어들면/ 건너편에서 말없이 진분홍 꽃숭어리를 떨구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만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어/ 혼자 외딴섬을 찾아가던 날은/ 보아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은 누구를 위해서 피우는 게 아니라고 말하듯//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 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 있어도/ 늘 거기 함께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이처럼 배롱나무는 우리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한 번 사랑하게 되면 아리땁고 고와서 늘 찾아가 아끼는 나무이다. 이 꽃의 꽃말이 재미있다. `떠나는 벗을 그리워하다`인데 벗은 아마도 죽은 사람이기보다 살아서 멀리 떨어진 애틋한 벗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아무려면 어떤가 배롱나무 아래에서 그리운 사람을 그려보는 일도 그 붉은 꽃그늘을 더 진하게 하는 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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