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가까운데도 우리가 이렇게 마음이 서로 통하는 걸 느껴보기란 참으로 몇 년만인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것 같다.
너는 지금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나는 지금 그런 네게 편지를 쓰고 있다. 너와 나는 조금 있다 같이 만나 어떤 상담을 하러 가기로 했지. 아빠는 네가 먼저 상담을 받아 보겠다고 해서 일단 너무나 반가웠단다.
그러나 이제 네가 새 마음을 먹은 것 같아 안도가 되는 한편으로, 이 새로운 시도가 다시 헛일로 돌아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난단다.
그래도 우리는 갑자기 서로 손을 잡고 한 곳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다. 이제 벌써 9월, 그러나 아주 늦은 때란 없는 법이니, 나는 열아홉 살 네 인생의 새로운 시도를 기꺼이 도와 드리겠다, 생각하고 있다.
갑자기 내가 열아홉 살 때는 어땠나 하는 생각이 났다.
지독히도 집에서 떠나고 싶었다. 다 지나고 나면 그런대로 견딜 만한 일들이었는데,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화해롭지 못하게 버티고 계신 집에서 마냥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학교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아이들처럼 가출을 해서 부산이나 광주로 떠나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는 어떻게 하나. 이 분들에게 나란 존재는 집안의 큰 아들, 내가 사라져 버리면 두 분 모두 밤잠 못 주무실 텐데. 두 분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집에 붙박혀 있는 내가 떠오르지 않는단다. 나는 늘 학교에 가 있거나, 길가에 있거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충남대학교 캠퍼스 어딘가에 앉아 있곤 했다. 나는 늘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서 내 단짝 친구네 집에서 밤을 새우고, 또 범위를 더 넓혀 이 친구, 저 친구 집을 빙 돌아다니곤 했지.
그러고 보니 정말 네가 이 아빠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자식 키워봐야 부모 고생을 안다고, 너를 키우면서, 네가 바깥으로 도는 걸 보면서, 아, 아버지, 어머니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셨겠구나, 야단이라도 치면 더 먼 곳으로 빙 돌아갈까 봐 아무 소리도 못하시던 두 분!
너는 이 아빠가 무슨 공부하는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 줄 알더구나. 그러나 모든 부모가 다 그러할 듯이, 이 아빠는 네가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은 진심이다.
오늘 아빠는 학교에서 학생 하나를 불러 꾸짖었단다. 1학년 때부터 아빠가 늘 관심을 가져오던 이 학생이, 지난 추석 며칠 전에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인사도 없이 스쳐 지나가는 걸 아빠는 도대체가 견딜 수 없었던 거지. 다른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더니 그 분에게도 늘 그런 태도라는 것이었다.
○○군. 왜 그렇게 이마에 뿔을 달고 다니는 거요? 선생님들한테도 이럴 지경이면 선후배들한테는 얼마나 상처를 주었겠소? 사람이 공부를 하는 게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는 거지, 지식이 쌓인다고 그게 공부요?
아빠가 꾸짖은 학생도, 너도 아빠는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걸 보고 싶다. 남에게 뿔을 내밀지 않는 사람, 제가 살아갈 길을 열심히 가는 사람, 이게 네게 바라는 전부라면 전부겠다.
아들, 벌써 가을이다. 그렇지만 지난 여름 더위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것 같구나. 아빠는 너무 답답하고 덥고, 그래서 숨쉬는 것조차 힘이 부치는구나. 얼마 전에 책을 내서일까, 살아가는 게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는구나.
너도 힘들겠지. 목적도 쓸모도 잘 모르겠는 공부가 뭐 그리 흥이 나고 정이 붙겠누?
하지만 우리 둘 다 힘들 내자꾸나.
모처럼 서로 뜻이 맞았으니, 더 좋은 날도 있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