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명절인 추석을 맞아 가정에 평안하길 기원드리며…”
배경 역시 한가위 두둥실 떠오르는 달이다. 그러고 보니 추석이 코앞이다.
올 추석은 달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현대 과학의 총체라 할 첨단기기가 예측한 일기예보에 따르면 추석 전후 우리나라 날씨는 궂은 날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달이 뜨지 않는 한가위는 흔한 말로 팥소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추석은 오곡백과 풍성한 가을 하늘로 두둥실 밝아보는 보름달을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은 그 풍경을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런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도 추석 명절은 분명 우리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그렇기에 우리 사회를 역동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대표적인 축제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치고 추석이란 거국적인 축제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 축제에는 질곡의 오랜 역사를 보듬고 살아온 우리 민족의 DNA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추석은 높은 빌딩이 있는 도시보다는 마을 입구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있고, 아이들 재잘거리는 공회당이 있고, 벼 이삭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에 더 어울리고, 붉은 고추가 널린 시골과 제격을 이룬다.
그것뿐이랴. 조상 묘 앞에 후손들이 엎드려 절하는 풍경은 추석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 풍경인가. 물론 농경사회에서 출발한 전통적인 축제이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자리잡고 있을 수도 있다.
부모와 떨어져 있던 대처의 자식들이 작은 선물꾸러미를 들고 시골의 부모를 찾는 풍경을 상상해 보라. 송편을 빚고, 부모 곁에 모인 형제자매가 둥글게 둘러앉아 살아가는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 풍경을 떠올리기만 해도 추석은 얼마나 행복한 명절인가.
정말로 해마다 맞이하는 추석명절이 이렇게 좋기만 하면 얼마나 좋으랴.
열심히 생활해도 곤궁(困窮)한 살림살이에 도대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그 원인조차 찾기 힘든 서민들의 숫자가 우리 이웃에는 너무 많다.
봉급생활자라 해도 자녀들 교육비와 오른 물건 값에 지갑 열기가 그리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돈은 흔하다는데 그 돈이 다들 어디로 갔는지 아직도 농촌 살림살이는 빚에 허덕이고, 재래시장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손님을 빼앗기고 있다고 난리다.
그래도 이때쯤 되면 우리 손으로 뽑은 민의의 대표들은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살펴본답시고 귀향하여 저자거리를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당신을 위해 내가 힘껏 뛰었다며 그들의 손을 잡아주려 한다.
왠지 그들이 내민 손이 서민을 위한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화려한 현수막 글씨 같이 서민의 미래를 위해 비전을 제시했던 공약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대생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제 동료 감싸기로 부정(不正)을 투표로 변호한 의원들의 식상한 행동에 우리의 눈은 새롭고 신선한 인물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보수든 진보든 제 이익 챙기기에 앞장서는 사람들의 모습에 서민은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다. 그 서민들의 곤궁한 살림이 좋아질 수 있는 대안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추석이다.
기상이변으로 잦은 비가 왔어도 포도밭의 포도는 영글고, 태풍이 지나갔어도 과수원의 과일은 가을을 맞아 탐스럽게 익고 있다. 계절의 윤회에 따른 추석명절은 우리 곁에 왔지만 그 추석이 진정 누구나 즐겁고, 누구나 기다리는 추석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큰 정치적 역량을 갖춘 사람이 둥근 달처럼 모든 이에게 밝을 빛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풍경이 더욱 절실한 한가위 명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