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이 매스가 큰 힘을 발휘하는 세계다. 우리는 최근 며칠 동안 서울에서 일어나는 이 매스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오늘날은 대중사회다. 사전에서 보면 대중은 지위, 계급, 직업, 학력, 재산 등의 사회적 속성을 초월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합체를 말한다.
무슨 뜻이냐? 사람들은 어딘가에 소속해 있어 조직의 일부를 이루지만 동시에 현대사회의 측면에서 보면 소속성 규정 없는 사람들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때 그 사람들을 가리켜 대중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안철수 씨가 서울시장에 출마할지 모른다고 하자 일군의 사람들, 즉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어느 정당이나 조직에 힘입어 의견을 표출하는 것도 아닌,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서나 하나의 집단적 의사로 나타나는, 그런 사람들의 열광적 의사 표출이 발생했다.
어느 쪽에서는 이를 두고 안철수 신드롬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 안철수 씨, 단 며칠만에 자신은 서울시장에 출마하지 않고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씨가 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하겠노라고 했다. 박원순 씨가 이 의사를 고맙게 받아들이자, 사람들은 다시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나경원 예비 후보 쪽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박원순 씨 쪽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아예 안철수 씨를 대통령 후보로 밀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대규모로 나타나고 있다.
썰물처럼, 밀물처럼 흘러들었다 흘러나가는 이 무정형의 힘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필자가 보기에 서울 시민들은 방황하고 있다. 이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정치적 소속감이 분명한 사람들은 한 50%나 될까? 아마 그조차 안 될 것이다. 과반수가 넘는 사람들은 지금의 양당정치적 제도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민주노동당이 있다고 해봤자 이 안에는 친북 노선을 가진 사람들까지 있다는 여론이 있는지라 그곳에 속하고 싶은 사람은 아주 적다.
서울 사람들 대다수, 그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은 특히 한나라당과 민주당 어디에도 `소속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지금의 양당적 제도 자체가 불만의 대상이다. 그들은 보수와 진보라는 말 자체가 주는 낡디 낡은 어감 자체에 혐오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형체를 갖춘 어떤 제도에도 소속되지 않고, 일종의 `유령`처럼 인터넷 공간 속에서나 썰물이나 밀물처럼 출몰하면서 제3의 길을 찾아 헤맨다.
그들은 새로운 길, 그 길을 지칭해 주는 새로운 말을 원한다. 그래서 안철수 씨가 자신은 반한나라당이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은 그의 새로움이 다시 낡은 언어의 답답한 경계 속에 갇혀 버리는 듯한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필자가 생각해 보기에, 비록 짧은 시간 동안 정치 현장에 나타났다 학교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는 안철수씨이지만, 그의 언어는 이랬어야 할 것 같다.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닙니다. 나는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아닙니다. 이 양쪽 진영의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이 양쪽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 틀에 박힌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모든 이들을 대변하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이런 포즈를 취했다면 그는 더 많은 이들의 기대를 끌어 모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에게는 기회가 크게 남아 있지만, 이 기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새로운 말로 전달하는 법을 찾아내야 한다.
안철수 씨를 둘러싼 매스들의 거대한 물결, 그 뒤바뀜은 서울이 얼마나 방황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념 싸움에 지친 이들에게는 어떤 정신적 안식처, 새로운 푯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