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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이야기

손경호(수필가)
등록일 2011-09-07 20:53 게재일 2011-09-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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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의 부모는 세상은 아직 설익은 과일같이 풋풋했지만 살고자 하는 의지는 자기의 목숨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관객에게 묻고 싶은 대목이다. 세월의 연륜으로 봐서도 감당하기엔 너무나 어린것 같이 보이는 사랑의 무게는 아픈 가슴 도려내는 잘못된 예견이었다. 주인공 혜화가 겪은 겨울 동안의 사랑 이야기라는 뜻이 담긴 `혜화, 동(冬)`은 아직도 세인의 가슴에서 식을 줄 모른다. 영화 `혜화, 동`은 젊은 관객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조용히 읊조리는 최루탄 영화다. 사랑에 실패한 여자 주인공 혜화는 “내가 이렇게 슬픈데 왜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처지를 몰라 주느냐”고 하소연도 울부짖음도 없다. 대신 떠나간 연인이 다시 찾아오자 아무런 반응도 없이 담담히 받아들일 만큼 웅숭스럽고 마음이 너그럽다. 겨울은 누구에게나 제한적이다. 솔잎에 얹힌 잔설 자락을 터뜨리는 설풍에도 좁은 마음은 더욱 움추리기 마련이다. 이 때 생각나는 시 한편에 마음의 한 구석이 누긋해 진다. “첫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누군가 자꾸 만나고 싶다. (어디론가 자꾸 떠나고 싶다)//낯익은 사람과의 만남도 좋지만/알면서도 한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을 더 더욱 만나고 싶다.//살아온 세상 얘기보다는/살아갈 세상을 얘기하면서/알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사연을 넋두리처럼 고백하고 싶다.//오랜 얘기를 하다 보면/서로가 가까워 졌어야 할 이유 하나로/그 땐 그저 푸념으로 남고 싶다//영화는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교직하며 그들이 타의에 의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을 그리고 있다. 18세, 너무 어렸기에 두 사람은 사랑의 결과를 감당할 수 없었고 세상 사람들의 주변의 일들이 그들을 갈라놓게 한다. 세파를 차고 나갈 용기와 힘도 없는 가냘프기만 한 얘기 같지만 그러나 관객들은 사랑의 깊은 의미를 잠시 정의하며 세상의 맛을 느끼게 하는 묘사들이 참 감미롭다.

/손경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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