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낫고 못한 차이는 있으나 잘잘못을 따질 필요없이 서로 비슷비슷함을 가리켜서 오십보 백보라 한다. 오십보 도망친 사람이 백 보 도망친 사람을 비웃는다는 뜻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 마찬가지란 말이다. 전국시대에 위나라 혜왕은 진나라의 압박에 견디다 못해 도읍지를 옮겼다. 그래서 혜왕은 국력회복을 자문하기 위해 제후들에게 왕도정치론의 스승인 맹자를 초청했다. “선생께서 천리길도 멀다 않고 이렇게 와 주신 것은 과인에게 부국강병의 비책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 아니겠소?”맹자 왈, “전하 저는 귀국의 부국 강병과 상관없이 인의(仁義)에 대해서 아뢰고자 왔습니다” “인의의 정치라면 과인은 평소부터 힘써 베풀어 왔소. 예컨대 하내지방에 흉년이 들면 백성을 하동지방으로 옮기고 하도에 기근이 들면 하내의 곡식으로 구호하도록 힘쓰고 있지만 백성은 과인을 사모하지 않고 또 이웃 나라의 백성수도 줄어들지 않고 있소. 대체 어찌된 일이오?” “전하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터에서 백병전(白兵戰)이 벌어지기 직전 겁이 난 두 병사가 무기를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오십보를 도망친 병사가 백보를 도망친 병사를 보고 비겁한 놈이라며 비웃는다면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나이까?” “그런 바보 같은 놈이 어디 있소? 오십 보든 백 보든 도망치기는 마찬가지 아니겠소?” “그걸 아셨다면 전하, 백성을 구호하시는 전하의 목적은 인의의 정치와 상관없이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이웃나라와무엇이 다르옵니까?” 혜왕은 대답을 못했다고 한다. 이웃나라와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백성을 구호한 것은 진정으로 백성을 생각해서 구호한 양 자랑한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사회도 또한 정치도 비슷하다. 우리나라 속담에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고 그야말로 피장 파장이다.
/손경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