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사람들은 다양한 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꿈은 붉을 수도 푸를 수도, 깊을 수도 얕을 수도, 클 수도 적을 수도 있다. 여하튼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좋은 꿈을 가지려면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가 있어야 아름다운 꿈이나 건설적이고 새로운 꿈을 품을 수 있다. 지혜는 내 속에서 희망을 솟아나게 하고, 새로운 것을 그리게 하며, 생명의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고비를 만나거나 어둠 속에서 헤맨다면, 이때야 말로 바로 꿈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대낮에는 세상 일로 인해 꿈을 꿀 수 없고, 어두워야 가능하다. 역경이나 힘이 드는 침울한 시간은 꿈을 만드는 절호의 찬스이다. 우리에게 불리한 시간은 지혜를 짜내는 꿈을 생산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우리들은 판에 박힌 일상생활에 지쳐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평범한 세상의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좀 더 아름다운 꿈을 가지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희망 속에서 살 수 있다. 젊은이는 비전을 갖게 되고, 노인들은 미래 속으로 자기를 던져 넣을 수 있다. 지혜를 동반한 꿈은 클수록 좋다. 그들에게는 일을 저지를 정도로 별나고 큰 꿈을 가져도 좋다. 꿈꾸는 자는 삶의 모습이 다르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이 된다.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이 자기의 욕망의 편에 서 있는 것인지, 또는 반대로 비교적 객관화가 가능한 상태인지를 보아야 한다. 그가 시도하는 많은 꿈의 계획을, 종교에서 말하는 신(神)의 편에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부자나 출세 등 자기만을 위한 희망이라면 개인의 욕망 수준으로서 의미나 가치가 줄어든다. 또 몸도 건강하고 쾌락도 누리는 꿈은 절대자, 신의 편에는 있지 않다.
꿈의 실현을 위해서는 좋은 친구나 멘토, 또는 스승에게 자기의 꿈을 말하고, 여러 가지 도움이나 지도, 충고 등을 받는 것은 잘하는 행위이다. 잘못된 부분을 지도 받음으로서 내 꿈은 더욱 확실하게 된다. 그리고 꿈의 성취를 위해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 작전을 잘 짜야 한다. 이런 일을 하면서 그는 꿈의 홍익성 유무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때 그는 일의 수행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거나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때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거나, 노력을 하면서 희생도 감수하지만 그 꿈을 이룰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결과는 종교의 신에게 맡겨야 한다. 몸과 마음의 움직임은 인간이 하지만, 결과는 신의 범위에 속한다. 내가 꿈꾼다고 모두 성취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새로운 삶을 아름답게 그려 가면서 살아가도 투자한 결과는 반대로 나타날 수도 있다. 신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모든 면에서 나약하다. 그래서 이때는 신에게 결과를 위탁한다. 인간은 오로지 노력할 따름이다. 즉, 꿈을 꾸면서 투자하고 노력하면서 희생하지만, 그러나 그 응답은 인간의 손에 있지 않다.
그렇더라도 그의 투자와 노력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인생에서 노력한 만큼의 배운 점이 있고, 그 노력만큼 절대 진리의 편에서 서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 큰 수확으로 남는다. 누가 인정하지 않아도 꿈을 위한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는 지혜자의 반열에 속할 수 있다. 그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신(神)만이 그의 노력을 인정할 수 있기에, 여기서 종교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각각의 나이에는 그 나이에 적합한 꿈이 있다. 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격을 수양하고, 또 거기서 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는 신만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