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런 말을 들었다. “당신의 자녀를 망치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아주 심하게 과외학습을 시키고 학원교습을 시켜라! 그러면 당신의 자녀는 자기의 꿈을 잃어갈 것이며 자기주도성을 상실해갈 것이며 자존감도 잃어버려 결국 인생을 망치는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그렇게 망가진 아이들을 고치고 치료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학습치료가 그것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학습치료`라고 쳐보라. 얼마나 많은 글들이 책들이 소개되는가를 살펴보라. ○○교육이라고 이름 한 존재들은 아이를 망치기도하고 다시 고쳐주기도 하는 그런 웃긴 존재들이다. 그래도 망가진 것을 되돌려주니 참으로 고맙고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왜 미래사회의 인재상을 창의적인 인간으로 볼까? 그 이유는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체계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다음 이야기로 간단히 답을 얻어 보기로 하자. 예일대학 심리학과 석좌교수인 스타인버그가 쓴 `성공적 두뇌`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똑똑이와 똘똘이가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똑똑이는 학교에서 최고의 우등생이고, 똘똘이는 소문난 개구쟁이였다. 어느 날, 이 두 친구가 산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다. 똑똑이가 보니까 호랑이는 250m 떨어져 있는데 달려오는 속도는 시속 50km 정도라고 파악되었다. 똑똑이는 정확히 계산을 해보더니, “야, 우리 이제 17.88초 후면 죽었다!”라고 재빨리 결론지으면서 친구 똘똘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똘똘이는 태연스럽게 자기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우등생인 똑똑이는 열등생 똘똘이를 비꼬았다. “멍청하긴, 니가 뛰어봤자지. 호랑이보다 빨리 뛸 것 같아?” 그러자 똘똘이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야, 나는 너보다만 빨리 뛰면 돼”
스타인버그 교수는 인간 두뇌를 연구한 결과로 인간의 지능이 분석력, 창의력, 적용력 세 종류로 구분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제껏 대부분의 교육이 분석력만 측정하고 계발한다고 지적했다. IQ테스트나 대입수능시험은 전적으로 분석적 능력만 측정한다는 것, 똑똑이와 똘똘이 이야기에서 누가 분석적 지능이 뛰어나겠는가? 그런데 누가 먼저 호랑이에게 잡혀 죽을까? 우등생 똑똑이의 분석적지능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실제 위기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창의력이 높은 똘똘이가 위기상황을 피해가는 걸 알 수 있다. 미래사회는 변화가 심한 사회이다. 변화를 헤쳐 나가는 데는 창의력만한 게 없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똑똑이와 똘똘이의 이야기에 결함이 하나있다. 위의 이야기에 나오는 똘똘이는 어째 좀 도덕적이지 못한 똘똘이라 보인다. 왜냐하면 남을 죽이면서 내가 살려고 하는 경쟁상태를 조성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 이런 비도덕적인 똘똘이가 얼마나 많은가? 남을 밀쳐내고 성공하는 인간을 미래에 잔뜩 길러내어 보아야 어떻게 한 사회가 제대로 지탱되겠는가? 그래서 도덕적인 똘똘이를 생각해본다. 이야기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다시 구성해본다.
똑똑이가 열등생 똘똘이를 비꼬았다. “멍청하긴, 니가 뛰어봤자지. 호랑이보다 빨리 뛸 것 같아?” 그러자 똘똘이는 말했다. “야 너는 옆으로 피해 내가 앞으로 달려 갈테니” 똑똑이의 마음이 갑자기 찡해지면서 눈물이 핑도는 눈길로 똘똘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야! 우리 꼭 살아서 보자”라고 하며 뛰어갔다.
창의성이 있는 인간이며 적용력이 있는 인간인 도덕적인 똘똘이를 키우는 교육환경이나 시스템을 어떤 나라가 가장 빠르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미래사회에서 국가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다 라고 많은 미래학자들이 강조해서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 길에 들어서 있는가? 라고 질문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