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몸매의 경제학설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9-01 23:26 게재일 2011-09-01 19면
스크랩버튼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한 여성 작가의 장편소설이 출판된 것을 축하해 주는 자리가 있어 참석하게 되었다.

극히 사적인 축하 자리여서 그런지 참석자라고는 불과 네 사람, 대학 선생이 두 사람에 뜻밖에도 전직 국회의원 한 분이 와 계셨고, 그리고는 책을 낸 소설가가 참석자의 전부였다.

정치인도 참석해 있고, 요즘 세상이 워낙 복잡한 탓에 화제가 자연스레 현실 이야기로 쏠렸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오세훈 시장 주민투표부터 최근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문제까지 두서없이 화제에 올랐다.

여성 작가께서 말씀하셨다. 지금 급한 건 무상급식, 즉 아이들에게 공짜로 밥 먹이는 게 아니라 보육문제다. 세계에서 가장 낮다는 우리나라 출산률이 그렇게 낮은 건 돈 때문이니 보육문제부터 신경 써야 한다. 그럼 무상급식 문제는 돈 문제 아니냐고 누군가 반문하니, 그래도 중요한 건 보육비 같은 큰 돈이지 고작 한 달 오만 원짜리 급식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전직 국회의원 분이 반론을 폈다. 그렇지 않다. 아이가 하나인 가정에서는 오만 원이지만 둘인 가정에서는 그게 십만 원이 된다.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이런 논조였다.

필자는 필자 나름의 계산법을 제시해 보았다. 내 친구 중에 일산에서 택시 운전하는 시인이 하나 있다. 이 시인 택시 기사는 하루 24시간을 꼬박 일하고 하루는 쉬는 격일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기본급은 64만원이다. 하루하루 사납급을 다 채워 넣어야 하고, 정해진 액수만큼 넣지 못하는 날은 그만큼 월급에서 깍여 나가게 된다. 사납금 다 채워 넣고 매일 3만원이나 5만원은 집으로 가져가 저금을 해야 겨우 백만 원 넘기는 수입을 잡을 수 있다. 이런 수입자에게 5만원, 10만원이 작은 돈은 아닐 것이다.

전직 국회의원 분이 필자의 원조에 힘을 내서 보육문제든 급식 문제든 지금 복지가 관건이라는 주장을 폈다. 서민들 사는 게 팍팍해서 복지를 확대해야 할 때다. 지금 각 가정마다 아이를 낳지 않아 인구가 감소할 지경인데, 이렇게 되면 대학도 문을 닫는 곳이 생기게 되고 주택 건설사들도 불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니 각종 복지 혜택을 통해 출산을 장려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것이 자연스레 경제 성장으로도 연결된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는 속에 필자는 문득 요즘 여자들의 몸매 관리가 그토록 치열한 것도 다 돈 문제 때문일지 모르겠다는 `이상한` 생각을 만들어 냈다.

인터넷을 보면 `하의 실종`이라는 말을 거의 매일 접하게 된다. 몸매를 날씬하게, 예쁘게 만들고, 그런 몸매를 또 과시하듯 짧은 스커트나 바지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 이런 여성들이 미인상이 된 시대에 아이를 낳아 적당히 살집이 늘어난 여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아무리 여자보다 어머니가 아름답다고 외쳐댄들 몸매 열풍에 넋을 빼앗긴 여성들 귀에 들어갈 리 없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혹시 몸매는 곧 돈이라는 관념이 이 여성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회사 같은 곳에서는 여성이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가지면 직장을 그만두길 바라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그렇지 않아도 여성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이 아이를 뱃속에 데리고 있는 열 달 동안, 그리고 아이가 세상에 나온 후 몇 년 동안을 경제생활에 전념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한국 같은 복지 수준의 사회에서는 여성이 결혼을 한다거나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경제생활에서의 도태를 의미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결혼한 여성, 아이를 가진 여성, 살집이 있는 여성은 곧 경제적으로 무기력하거나 무능력한 여성이라는 도식이 알게 모르게 성립해 버린다.

여성들은 섬세하고 민감하다. 그러니 몸매가 경제가 되는 시대에 즉각 반응하게 된다. 자신들이 왜 그토록 몸매에 신경을 쓰는지 알지 못한 채, 그것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시대의 험난한 생존조건에 적응해 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가? 꽤 그럴듯한 몸매의 경제학설이 아닌지 모르겠다.

종합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